“트럼프 소송, 법적 근거 없어…정권에 대한 반대 틀어막으려는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를 상대로 150억 달러(21조 원) 규모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데 대해 이 신문사 최고경영자(CEO)가 “압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메러디스 코핏 레비언 NYT 컴퍼니 사장 겸 CEO는 1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 주최로 열린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정상회의’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트럼프의 소송 제기는 법적 근거 없이 독립적 저널리즘을 협박해서 굴복시키려는 반(反)언론 수법이라며 “튀르키예와 헝가리와 인도 같은 나라들을 보면 이런 나라들은 선거를 하지만 정권에 대한 반대를 틀어막으려고 열을 올린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런 곳들에서 쓰이는 반언론 수법”은 “언론인들을 괴롭히고, 독립적 저널리즘에 대한 불신을 유도하는 것”이라면서 “우리가 여기(미국)에서 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레비언 CEO는 이번 소송 제기가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이뤄졌다며, “독립 저널리즘을 질식시키고 (뉴욕)타임스와 다른 기관들이 정평이 나 있는 사실 기반 보도를 하지 못하도록 유도하려는 것”이 트럼프가 소송을 제기한 목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트럼프의 소송 제기는) 그런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사실이 이끄는 곳이기만 하면 어디든지 계속 따라갈 것이며, 불편한 곳으로 가더라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NYT를 상대로 낸 이번 소송에 대해 레비언 CEO가 공개적으로 발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FT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 밤에 플로리다 중부 연방지방법원에 제출한 소장에서 NYT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거짓을 전파하는 데에 앞장서는 뻔뻔한 매체”라고 비난했다.
그는 손해배상청구액 150억 달러에 더해 법원이 징벌적 배상도 함께 내려달라고 청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주요 언론사를 상대로 수십억 달러 규모의 명예훼손 소송을 낸 것은 작년 3월 이래 이번이 4번째다.
소송을 당한 전국 공중파 방송 중 ABC 뉴스는 작년 12월에, NBC 뉴스는 올해 7월에 거액의 합의금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합의했으며 트럼프 측은 그 대가로 소송을 취하해주기로 했다.
합의금 액수는 ABC 뉴스 1천500만 달러(210억 원), NBC 뉴스 1천600만 달러(220억 원)였으며, 이 돈은 트럼프 기념도서관 건립에 쓰이는 것으로 계획돼 있다.
올해 7월 트럼프 대통령은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허위보도로 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하면서 100억 달러(14조 원) 규모의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이는 WSJ가 트럼프 대통령과 친분이 있었던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1953-2019)의 50세 생일 때 만들어진 이른바 ‘엡스타인 생일책’에 트럼프가 서명한 편지가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WSJ의 모회사 다우존스컴퍼니는 이 소송에 대해 “열성적으로 방어”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언론자유 문제 전문가들은 NYT를 상대로 한 트럼프의 손해배상 소송은 ‘이유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FT에 밝혔다.
하버드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수정헌법 제1조 전문 헌법학 석좌교수인 레베카 투시넷은 이번 소송제기에 대해 “진실, 미국 공중(公衆), 사법 절차, 그리고 미국의 전통 가운데 우리의 존중을 받을 가치가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모독의 표현”이라고 평가했다.
예일대 정보사회 프로젝트 펠로를 맡고 있는 유타대 법학전문대학원의 놀렌 앤더슨 존스 교수는 이번 소송의 법적 쟁점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며 “언론에 반대하는 선언문으로서의 역할”, “방어하는 데에 엄청나게 비용이 많이 드는 소송을 내는 것”, “비판적인 탐사보도의 강력한 원천에 맞서서 레버리지를 제공하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이 소송을 제기한 1차적 목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은 FT의 논평 요청에 즉각 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