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

"이것은 일어났던 일이고 ,그러므로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사진출처:Holocaust Memorial Day Trust Facebook

 ‘의심하지 않은 죄, 생각하지 않은 죄, 그리고 행동하지 않은 죄’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인 오늘(27일)은  홀로코스트로 학살당한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날이다.

2005년 11월 1일 국제 연합 총회에서 1월 27일을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로 지정하는 결의를 채택하였다. 1월 27일로 정한 것은 1945년 1월 27일에 소련의 붉은 군대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던 죄수를 해방시켰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는 나치 정권과 그 협력자들에 의하여 6백만의 유대인에게 자행된 국가 차원의 체계적이고 관료적인 탄압과 대량 학살이었다. “홀로코스트”는 “불에 의하여 희생된 제물 (번제)”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이다. 1933년 1월에 집권한 나치는 독일인을 “우월한 인종”으로 믿는 믿음 속에 유대인을 “열등한 인종”으로 규정하여 소위 독일의 인종 사회를 위협하는 외부인으로 치부하였다.

아우슈비츠(Auschwitz) 이후 더 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한 아도르노(Theodore W. Adorno)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홀로코스트는 살아남은 자들을 구속하는 20세기의 가장 어두운 기억이다.

 아우슈비츠의 원래 이름은 오시비엥침 이다. 폴란드 남부의 문화도시 크라쿠프에서 100여 킬로 떨어진 곳으로, 옛 폴란드의 병영이 있던 자리였다고 한다. 이곳은 당시 독일이 점령한 유럽을 놓고 보자면, 그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각지로부터 대규모의 수송과 이동에도 편리한 지점이었다. 

1940년 독일은 늘어나는 폴란드 정치범을 수용한다는 명목으로 이 곳에 ‘감옥’을 짓고 이름도 독일식인 아우슈비츠로 바꾸었다. 나치의 유태인 문제에 대한 최후의 해결책, 즉 유태인 말살정책을 실행에 옮기기 1년여 전의 일이었다. 

그 후 나치의 세력이 확산됨에 따라 수용소도 늘어나 제2, 제3의 수용소가 속속 생겨났다. 1944년까지 존재했던 수용소는 모두 40여 개를 웃돌았는데, 대부분 광산이나 제철소 등 대규모의 공장 가까이에 지어졌던 것은 수용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나치의 유대인 말살 정책에 의해 이 곳에 수용된 사람들은 폴란드 출신 유대인이 가장 많았지만 소련의 전쟁 포로, 유고슬라비아, 체코, 그리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유럽 각지에서 끌려 온 공산주의자들, 사상범들, 그리고 집시들도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요컨대 수용소는 나치 권력의 눈 밖에 난 인종적 정치적 소수자들의 전시장과 같은 것이었다.

이들은 수용소에 도착하면 즉시 분류되어 수감되었는데, 노동력이 없다고 생각되는 환자나 어린이, 노인, 부녀자 등 70퍼센트 이상은 분류나 기록의 대상조차 되지도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 수용소의 정확한 희생자를 헤아리기 어려운 이유도 그 때문이다.

홀로코스트는 여타 학살과 구분되는 몇 가지 특이점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특징은, 전쟁터에서 우발적으로 벌어지는 포로 학살이 아닌, 자국(점령지) 내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한, 매우 체계적인 정책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홀로코스트라는 건 아돌프 히틀러 혼자만의 작품은 아니다.

제3 제국의 인종 정책의 의미는 사실 땅을 점령해서 독일인에게 배분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그 영토에 사는 사람들은 독일인이어야 했다”는 논리적 문제가 생기는 거다. 즉, 슬라브인들을 그 땅에서 추방하거나 잡아 죽이고 그 땅을 독일인에게 준다는 잔인한 개념을 생각해 낸 것이다. 

종전 후 전범으로 체포되어 법정에서 선 유대인 학살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은 자신은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이에 담당 검사는 그에게 ‘의심하지 않은 죄, 생각하지 않은 죄, 그리고 행동하지 않은 죄’를 물어 사형을 구했다.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모두 지켜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은 의외로 평범하다’며 악의 평범성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한 사람의 극단적인 이념에서 시작된 집단의 광기가 실은 우리들과 같이 평범한 사람들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끔찍한 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기에, 과거의 기록과 증언을 묻고 지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끊임없는 되새김질을 통해 현재를 사는 우리는 순간마다 ‘고민하고, 자신을 살피며 , 생각하고 ,신중히 행동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전시장 초입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홀로코스트 증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프리모 레비(Primo Levi)의 글이다. 

“It happened, therefore it can happen again: this is the core of what we have to say.”

(이것은 일어났던 일이고 , 그러므로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해야 할 핵심이다.) 

사진출처:Holocaust Memorial Day Trust Facebook

권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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