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오브라이언, 21년 만의 소설…하루키 “비수 같은 묘사”
2019년 8월 말 어느 토요일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소도시의 마트 매니저로 일하던 보이드 핼버슨은 권총을 들고 한적한 은행을 찾아간다.
보이드는 이 작은 은행을 홀로 지키던 직원 앤지 빙에게 권총을 보여주며 은행에 있는 모든 돈을 담으라고 명령하고, 앤지를 납치해 낡은 차에 태운 뒤 멕시코로 향한다.
보이드가 은행을 털어 챙긴 돈은 8만1천달러. 이 은행 계좌에 보이드가 예금한 돈이 7만2천달러가량이었던 걸 고려하면 보잘것없는 액수다.
사실 보이드가 범행을 저지른 것은 돈 때문이 아니다. 그는 나락으로 떨어져 더는 갈 곳이 없는 자기 삶을 바꾸고 싶은 마음에 충동적으로 일을 저질렀다.
과거 보이드는 잘나가는 기자였으나 거짓 기사를 썼단 이유로 실직하고, 반성하는 대신 아예 자신만의 뉴스 사이트를 열어 온갖 허무맹랑한 가짜뉴스를 양산해냈다.
그러나 장인인 짐 두니는 보이드가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거짓말쟁이라고 폭로한다. 모든 것을 잃고 아내와 이혼한 보이드는 은행을 턴 다음 멕시코에 잠시 머물며 추적을 어렵게 만든 뒤 옛 장인 짐에게 앙갚음하러 미국 샌타모니카로 향한다.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미국 작가 팀 오브라이언(79)의 장편소설 ‘미국 환상곡'(섬과 달)은 가짜뉴스로 인해 벌어지는 촌극을 담은 블랙 코미디다.
소설은 “아프리카만큼이나 오래된, 바빌론보다는 더 오래된 그 전염병은”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어 “허언증, 즉 거짓말병은 악취를 달고 왔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작가는 미국 사회에 만연한 가짜뉴스와 이를 퍼뜨리는 행동을 전염병에 빗대며 보이드를 위시한 감염자들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다.
초반부 보이드의 동료들은 어떤 거짓말을 유포할지 의논하는데, ‘미국 연방수사관들이 벌새 안에 스파이 카메라를 심어놨다’, ‘링컨 대통령은 사실 존재하지 않았고 선거인단이 지어낸 거짓 인물이다’ 등 황당무계한 것들이 난무한다.
일당 중 한 명이 ‘누가 그런 말을 믿느냐’며 회의감을 드러내자 다른 한 사람은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이 나라의 3분의 1, 내가 장담해.”
물론 이 소설은 허구지만, 대중이 입증된 사실마저 받아들이지 못하고 음모론을 믿는 일이 정치·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미국 사회의 모습과 비슷하다.
작가는 베트남전 참전 경험을 살려 집필한 소설 ‘카차토를 쫓아서’로 1979년 전미도서상을 받으며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반열에 올랐다. 그런 그가 2002년 ‘줄라이, 줄라이’ 이후 21년 만인 2023년에 발표한 소설이 ‘미국 환상곡’이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팀 오브라이언을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으며 그의 소설을 네 권 번역했다. 하루키는 이 책의 추천사에서 “그의 소설에 담긴 이라크 전쟁 이후, 코비드 중반, 트럼프 중반 세상에 대한 아이러니한 묘사는 비수 같고 면도날처럼 날카롭다”고 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