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문 입막음 돈’ 의혹으로 작년 3월 기소…”정치적 기소” 주장
‘민주당 텃밭’ 맨해튼서 배심원단 구성…선정에만 몇 주 걸릴 수도
판사, 트럼프측의 기피신청 반려…다른 ‘입막음 돈 사례’ 증거 인정
미 공화당의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추문 입막음 돈’ 의혹 사건에 대한 형사재판이 15일 개시됐으나 배심원을 한 명도 선정하지 못한 채 첫날 일정이 마무리됐다.
미국에서 전직 대통령이 형사 피고인으로 서는 사상 첫 재판이라는 점과,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열려 정치적으로 아주 민감하다는 점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죄 여부를 결정할 배심원단 선정에만 몇 주가 소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성추문 입막음 돈 관련 의혹으로 기소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형사재판이 이날 미국 뉴욕 맨해튼지방법에서 시작됐다.
본격적인 심리에 앞서 이날은 배심원 선정 작업이 진행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대선 직전 전직 성인영화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와의 과거 성관계 폭로를 막기 위해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을 통해 ‘입막음 돈’을 지급한 뒤 그 비용과 관련된 회사 기록을 조작했다며 34개 혐의를 적용해 지난해 3월 형사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이번 재판의 배심원 선정 작업이 쉽지 않을 것이란 법조계 안팎의 전망이 일찌감치 나온 가운데 실제로 이날 2시간가량 진행된 배심원 선정 과정에서 단 한 명의 배심원도 결정되지 않은 채 첫날 재판이 종료됐다.
이번 재판을 위해 무작위로 선정된 예비 배심원 수백명이 법정 출석 요청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이날 재판정에 나와 배심원 적격 여부를 검증받았다.
재판에 공정하게 임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히거나 생계유지 등 특정한 사유가 있는 이들은 배심원 선정 과정에서 일차로 배제된다.
남은 예비 배심원들은 사전에 작성된 42개 질문에 답해야 하며, 트럼프 측 변호인과 검사 측은 각각 제한된 수의 인원을 이유를 설명할 필요 없이 제외할 수 있다.
그 외에는 공정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되는 사유를 제시해야만 배심원 배제를 요청할 수 있다.
재판을 맡은 후안 머천 판사는 이날 오후 법정에 나온 예비 배심원 96명을 향해 사건 개요를 설명한 뒤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자신이 공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 손을 들라고 요청했다.
이 같은 1차 심문에서 50명 이상이 손을 들었고, 이들은 즉시 배심원 선정에서 제외됐다고 NYT는 전했다.
이후 절차는 1차 심문 후 남은 예비 배심원들이 차례로 나와 간단한 질문 등에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도서 판매원이라고 직업을 밝힌 한 예비 배심원은 “전직이든 현직이든 법 위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해 주목을 받았다.
재판이 열리는 뉴욕 맨해튼이 미국 전체에서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가장 강한 지역 중 한 곳이다 보니 트럼프 전 대통령 측에선 즐겨 보는 뉴스 매체 등 정치 성향을 추정할 수 있는 각종 질문을 통해 트럼프 측에 우호적인 배심원을 최대한 가려내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WSJ에 따르면 지난 2020년 대선에서 맨해튼 지역은 87%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을 선택했다.
NYT는 “배심원 선정에만 며칠 혹은 몇주가 걸릴 수 있으며, 재판 자체는 2개월이 걸릴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한편 이날 배심원 선정 작업에 앞서 트럼프 측 변호인은 담당 재판관인 후안 머천 판사의 딸이 민주당의 정치 컨설턴트로 일했기 때문에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없다며 머천 판사를 상대로 기피 신청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동안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이 재판을 대선 이후로 미루거나 관할 법원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한 곳으로 바꾸기 위해 총력전을 펼쳐왔다.
담당 검사는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이 머천 판사의 함구령을 위반해 핵심 증인 대니얼스와 코언을 향해 비판적인 게시글을 올렸다며 벌금 3천달러를 부과해달라고 요청했다.
또 검사 측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또다른 ‘입막음 돈’ 의혹을 받는 타블로이드지 내셔널인콰이어러 관련 사안을 이번 재판의 증거로 채택해 달라고 요청했고, 머천 판사는 이를 수용했다.
검찰은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선거에 불리한 정보를 사들인 뒤 대중에 알려지지 않도록 묻어버리는 ‘캐치 앤드 킬'(catch and kill) 수법을 활용했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 이번 재판 범죄사실에는 포함되지 않은 입막음 시도 사례가 2건이 더 있다고 주장해왔다.
다만, 머천 판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외설적 발언이 담긴 ‘액세스 할리우드’의 녹음파일을 배심원단에게 들려줄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검찰 측 요구는 “완전한 루머, 완전한 가십거리, 완전한 소문”이라며 수용하지 않았다.
2016년 대선 과정에서 공개돼 논란이 일었던 액세스 할리우드 파일은 남성 사회자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버스 안에서 나눈 대화를 담았다.
이날 오전 9시 30분 법정 앞에 도착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취재진에게 자신에 대한 기소가 ‘정치적 기소’임을 주장하며 “이것은 미국을 향한 공격이다. 나는 여기 있는 게 자랑스럽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형사사건 피고인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약 6∼8주로 예상되는 재판 일정 내내 법정에 출석해야 한다.
재판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로 예상되며, 수요일을 제외하고 주중 4회 열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 기간 야간 시간대에 선거 캠페인을 지속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