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가 부의 축적을 위한 분산형 수단으로 각광받아 왔지만, 높은 변동성과 정치적 입장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꾸준한 비판도 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주주로 있는 ‘트럼프 미디어 앤드 테크놀로지 그룹(Trump Media & Technology Group)’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직접 보유하는 현물 암호화폐 상장지수펀드(ETF)를 출시한다고 지난 16일 발표해 시장의 관심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전히 높은 가격 변동성과 불완전한 소비자 보호 규제, 그리고 특정 커뮤니티를 겨냥한 마케팅 전략이 결합돼 투자자, 특히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이민자 커뮤니티에 심각한 재정적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 13일, 아메리칸커뮤니티미디어(ACoM) 주최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베터마켓(Better Markets)’의 캔트렐 듀마스 파생상품 정책 디렉터는 “미국 내 암호화폐를 실제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1%도 되지 않는다”며, “대부분의 암호화폐 거래는 여전히 투기성 투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2025년에 실시된 미국 내 암호화폐 보유자에 대한 최대 규모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약 20%인 5,500만 명이 암호화폐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들 중 76%는 암호화폐가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3%는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암호화폐 투자는 백인(14%)보다 아시아계(24%) 및 흑인·라틴계(21%)에서 더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인종 간 자산 격차는 이러한 추세에 위험 요소로 작용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백인 가구의 중간 순자산은 흑인 가구의 6배, 라틴계 가구의 5배에 달해, 상대적으로 자산이 적은 유색인종 가구가 손실 시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FBI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접수된 암호화폐 사기 신고는 15만 건에 달했으며, 피해 금액은 93억 달러로, 전년 대비 66% 증가했다. 특히 피해자의 다수는 60세 이상의 고령층으로, 이들은 주로 모바일 앱이나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피싱, 투자 사기, 사칭 사기 등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캔트렐 듀마스 디렉터는 암호화폐 인출기(ATM)를 대표적인 피해 사례로 지목했다. 그는 “이 기기들은 대부분 흑인 및 라틴계 저소득층 지역에 설치돼 있으며, 현금으로만 암호화폐를 구매할 수 있는 구조인데, 수수료가 20%를 넘는 경우가 많아 실질 가치가 크게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FBI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에만 비트코인 ATM 관련 사기 피해 금액은 6,500만 달러에 달한다.
엘리자베스 콱 FTI 컨설팅 매니징 디렉터는 “암호화폐 시장은 규제가 부족하고 구조가 복잡해 사기 여부를 파악하기 어렵다”며, “소수계 이민자나 금융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한 고위험 상품 마케팅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암호화폐 지지 입장을 공개하며, 가족들과 함께 암호화폐 관련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적 영향력이 시장에 미치는 효과 또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연방 의회에서는 암호화폐 시장의 규제 강화를 위한 입법 논의가 진행 중이다. 하원은 2023년 디지털 자산 시장 구조법(Digital Asset Market Structure Bill)을 통과시켜 명확한 규제 기준을 마련했으며, 상원에서도 SEC와 CFTC의 규제 권한을 명확히 하고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는 법안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합법화 법안도 상정돼 있지만, 세부 조항에 대한 이견으로 최종 통과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전문가들은 “규제의 공백이 투기와 사기를 부추기고 있다”며 “의회가 실질적인 소비자 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