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양재동 사옥[현대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사건 경위·추이에 ‘촉각’…”당장 불안 요소는 없을 것”
“대규모 투자에도 돌아온 건 단속”…미 경영환경 악화에 우려
미국내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미국 당국의 불법체류자 단속에 한국 근로자까지 다수 체포된 것으로 전해지면서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크게 긴장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에 부응해 미국 투자를 결정한 기업에 대해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서 향후 미국 내 경영 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5일 외신과 산업계에 따르면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EC)과 국토안보수사국(HSI) 등이 조지아주 서배나에 위치한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공장(HL-GA 배터리회사) 건설 현장에서 벌인 대대적 불법체류자 단속 결과 약 450명이 체포됐다. 이 중에는 협력업체 직원을 포함해 한국에서 현지로 출장을 간 직원 30명 이상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직원들이 체포된 이유로는 사업 목적인 B1, B2 비자가 아닌 단기 체류 목적 무비자인 ESTA(전자여행허가제)를 통해 미국 출장을 간 것이 문제가 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 중”이라며 “임직원과 협력사 인원들의 안전과 신속한 구금 해제를 위해 한국 정부 및 관계 당국과도 적극 협조하고 있고, 통역 및 변호사 지원 등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구금된 인원 중 현대차 임직원은 없다”면서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 중이고 현장에서 근무하는 인원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이번 공장 외에도 현지 공사 작업이 다수 예정돼 있어 이들 작업의 추가 차질 우려도 제기된다.
현재 예정된 사업으로는 3만대 규모의 로봇 공장 신설과 루이지애나주에 270만t 규모의 전기로 제철소 건설 등이 있다.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생산능력도 30만대에서 50만대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다른 국내 기업들은 정확한 사건 경위나 혐의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사건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반도체와 배터리, 자동차 등 주요 기업들이 미국 현지에 진출한 상황에서 이 같은 사건이 재발할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다만, 대부분 업체는 이미 공장을 완공했거나 미국에 진출한 지 수십 년간 관련 사항을 면밀히 챙겨온 만큼 당장의 불안 요소는 없다는 분위기다.
2기 트럼프 행정부 들어 불법체류자 단속과 입국 심사가 강화되면서 관련 가이드라인을 정비한 곳도 이미 다수다.
최근 삼성전자는 “ESTA를 이용한 미국 출장 시 입국 취소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며 “”ESTA를 활용한 미국 출장 때 1회 출장 시 최대 출장 일수는 2주 이내로 하고, 2주 초과 시 조직별 해외인사 담당자에게 문의해달라”고 공지하기도 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공장 건설을 이미 마친 회사는 현장 근로자가 많이 필요하지 않아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이번 외에 다른 단속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미국에서 오랜 기간 사업을 한 기업들은 비자 문제를 철저히 다루고 있다”며 “다른 문제라면 몰라도 이번 건과 같은 일로 추가 대책이 필요한 단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가뜩이나 관세정책과 미국 중심 공급망 재편 등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이민 문제까지 걱정해야 하는 등 갈수록 악화하는 미국 내 사업 환경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 지난 3월 미국에 4년간 총 210억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고, 지난달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투자 규모를 260억달러로 키웠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당시 현대차를 “대단한 기업”이라고 치켜세우며 관세를 안 내도 된다고 했지만 돌아온 것은 대규모 이민 단속이었다.
우리나라에 대한 미국의 상호관세율이 25%로 정해졌지만 정확한 적용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고, 반도체와 의약품 품목관세도 발표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기업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 걱정이 된다. 미국에 투자하라고 해서 하는데 저런 식으로 나오면 어찌해야 하냐”며 “안 그래도 미국에서 싼 인력을 구하기도 힘든데 앞으로가 더욱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