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방조죄 적용 가능성에 법조계 “쉽지 않지만 상황 따라 가능”
‘조력사망 도입’ 법안은 계류 중…”돌봄 연장선” vs “현대판 고려장”
말기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연(박지현 분)은 한때 친구였던 은중(김고은 분)에게 함께 스위스에 가 ‘안락사’를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은중은 갈등 끝에 스위스로 향해 상연의 마지막을 지킨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의 이야기다. 만약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은중은 자살방조죄로 처벌받을까.
28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스위스에서 ‘조력사망'(조력 존엄사)으로 생을 마친 한국인은 모두 10여명으로 추정된다. 조력사망이란 의사가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고통 없이 사망할 수 있도록 약물을 처방하고 환자 스스로 투약해 사망하는 것을 말한다.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은 환자와 보호자의 선택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멈출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를 넘어선 약물 처방과 투약은 허용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유일하게 외국인에게 조력사망을 허용하는 스위스행을 택한 이들 역시 동행인을 두고 마지막까지 고민한다고 한다.
2023년 어머니의 ‘스위스 조력사망 여정’을 함께한 남유하 작가(한국존엄사협회 홍보이사)는 “죽음을 결정한다는 게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많이 고민하신다”며 “동행인이 자살방조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걱정은 기본적으로 있다”고 했다.
최다혜 한국존엄사협회 회장도 “남편과 함께 (스위스에) 가고 싶다던 말기 암 환자에게 ‘아버님이 한국에서 경찰 조사를 받을 수 있다’고 말씀드려 결국 동행을 포기한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조력사망에 단순 동행한 것만으로 자살방조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동행인이 기소돼 처벌받은 사례도 현재까지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처벌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곽준호 변호사(법무법인 청)는 “조력사망 의사가 이미 확고한 상황에서 단순히 옆을 지킨 것만으로는 처벌이 어렵다”면서도 “자살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거나 북돋우는 등 자살 의사가 확고해지도록 도와주거나 항공권 등 비용을 지원할 경우 자살방조죄가 성립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현호 변호사(법률사무소 해울)도 “조력사망 당사자의 자발성과 동행인의 적극성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척수염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명식(64)씨와 그의 딸은 2023년 조력사망을 입법하지 않는 현 상태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으나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현 국방부 장관)도 지난해 7월 ‘조력존엄사법’ 제정안을 발의했지만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한국존엄사협회는 오는 11월 1일 ‘세계 죽을 권리의 날’을 맞아 조력 존엄사 등의 입법을 촉구하는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출발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명동성당 등을 거치는 경로다.
남 작가는 “한국에도 조력사망 제도가 있었다면 엄마를 굳이 스위스까지 보내지 않고 더 편하게 보내드렸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며 “호스피스 확충과 병행해 돌봄의 연장선에서 조력사망도 선택지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남용 가능성 등에 조력사망 입법을 우려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2009년 대법원이 처음으로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한 ‘김 할머니 사건’에서 유족 측을 대리했던 신 변호사도 반대 입장을 밝혔다.
신 변호사는 “사회복지 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해 건강보험 부담률을 어떻게 높일지에 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며 “지금처럼 노인 빈곤이 심각하고 사회보장도 미흡한 상황에서는 조력사망이 ‘현대판 고려장’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 모두 찬반을 떠나 아직 우리 사회의 금기어인 ‘죽음’에 대한 공론화가 더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 회장은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고통,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막연히 느꼈던 이들이 드라마를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갖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