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세계는 지금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지난 20여 년간, 특히 2019년까지 인류는 역사상 유례없는 성과를 이뤄냈다. 극빈층은 눈에 띄게 줄었고, 산모와 영아 사망률은 절반 이하로 감소했으며, 여성들의 교육 참여율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이러한 진전은 결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원조와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서방 국가들이 원조를 축소하면서, 이 모든 성과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일부 초빈곤국에서 원조는 정부 예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원조 축소는 곧 교육·보건·사회기반시설 투자의 중단을 의미하며, 이는 단순한 행정상의 어려움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존 문제와 직결된다. 이미 몇몇 나라에서는 필수 프로그램이 멈췄고, 그 결과 수많은 이들이 위험에 내몰리고 있다.
특히 시리아, 남수단, 소말리아, 콩고민주공화국과 같이 분쟁과 기후재난이 겹친 지역은 더욱 심각하다. 수많은 아동이 굶주림의 벼랑 끝에 서 있고, 원조 삭감은 그들을 실제로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미국이 전면적으로 식량 원조를 중단하지는 않았지만 상당 부분이 취소되면서, 국제구호기구와 지역 단체들이 붕괴 위기에 놓였다. 원조를 전달하는 인프라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보건 분야의 타격은 치명적이다. 미국이 주도했던 HIV 치료 프로그램 ‘PEPFAR’와 백신 접종을 확대해온 세계백신기금(GAVI)은 수많은 생명을 살려왔다. 그러나 미국 내 정치 환경은 심지어 백신조차 불필요하다는 인식을 퍼뜨리고 있으며, 이는 국제 보건 지원의 의지를 약화시키고 있다. 만약 HIV 치료와 백신 접종이 줄어든다면 예방 가능한 사망자가 폭증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원조가 부패와 낭비의 온상이라는 비판을 제기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USAID를 겨냥해 그런 주장을 했다. 그러나 제가 경험한 바로는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문제는 ‘사기와 부패’가 아니라 지나치게 복잡한 절차로 인한 비효율이다. 이는 개선해야 할 행정적 문제이지, 원조 자체를 무용지물로 몰아붙일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지금 노르웨이와 스페인이 미국의 빈자리를 메우려 하고 있지만, 규모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제는 인도, 브라질, 남아공 같은 중견국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또한 민간 부호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전 세계 상위 3000명의 부호가 재산의 1%만 기부해도 1,400억 달러가 마련된다. 이는 현재 사라지고 있는 원조를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는 규모다. 문제는 재원이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의지다.
여기서 언론의 역할도 결정적이다. 언론은 종종 실패와 부패, 재난에만 초점을 맞추지만, 원조가 실제로 극빈층을 줄이고 아이들의 생명을 연장했으며 여성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열어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긍정적인 성과를 균형 있게 보도할 때 국제사회의 의지가 살아난다.
원조는 단순히 돈을 주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엄을 지키는 최소한의 약속이다. 기후변화, 전염병, 난민 문제는 국경과 상관없는 전 지구적 위기이며, 협력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 원조 삭감은 결국 세계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다.
인류는 이미 원조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 성과를 지키고 확대하는 일이다. 세계는 여전히 희망이 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우리 모두의 의지와 연대에 달려 있다. 원조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우리는 이 의무를 외면할 수도, 연기할 수도 없다. 지금 행동하지 않는다면 내일은 너무 늦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