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연설서 “한국을 군사적으로 돕는데 관세는 美의 4배” 주장
4월2일 상호관세 발표 앞두고 트럼프의 ‘잘못된 인식’ 교정 시급
조선·알래스카 가스관 등 협력 분야 거론은 긍정 요소…北 언급 안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집권 2기 첫 의회 연설에서 미국이 대외관계에서 ‘손해’를 보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로 한국을 특정해 거론함에 따라 파장이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행한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셀 수 없이 많은 국가가 우리가 그들에 부과한 것보다 훨씬 높은 관세를 부과한다. 매우 불공정하다”고 운을 떼고는 인도와 중국 사례를 거론한 뒤 “한국의 평균 관세는 (미국보다) 4배 높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생각해봐라. 4배나 높다. 우리는 한국을 군사적으로 그리고 아주 많은 다른 방식으로 아주 많이 도와주는데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우방이 이렇게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한국의 관세가 미국의 4배라는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은 자신들의 무역 파트너 중 무역적자액 ‘톱 10’ 안에 포함돼 있다.
한국은 중국, 멕시코, 베트남, 아일랜드, 독일, 대만, 일본 등에 이어 무역흑자 8위에 자리한다. 작년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액은 557억 달러(약 81조원)에 달한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있어 절대 다수 품목에서 서로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관세율이 미국보다 4배 높다는, 사실과 다른 주장을 편 것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나 다름없다고 주장하는 한국의 부가가치세를 염두에 둔 것일 가능성도 있지만, 한국과의 무역 관계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군사적으로 지원하고 있음을 거론한 것도 심상치 않은 대목이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이 때로는 경제에 있어서는 적성국보다 미국에 더 나쁘다는 주장을 해오면서 주로 유럽 사례를 거론해 왔는데 이날은 한국을 꼽은 격이었다.
이에 따라 한국으로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인식을 바로 잡지 않으면 경제와 안보에서 상당한 압박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된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이 내달 2일로 예고한 ‘상호 관세’ 부과에서 한국에 높은 세율을 적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상호 관세는 상대국이 부과하는 만큼 부과한다는 취지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관세는 물론 정부 보조금과 부가가치세 등 비관세 장벽들도 감안해서 상호관세율을 책정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향후 한미간 협상 과정에서 미국 측은 관세 등 경제 이슈와 함께 주한미군 감축 여부와 방위비 분담금(주한미군 주둔 비용 중 한국의 분담액) 대폭 증액 등을 제기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현재 탄핵 국면에서 정상외교의 부재를 겪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당장 큰 틀에서 정상간 정치적 타결을 모색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은 불리한 여건으로 평가된다.
다만 이날 연설에서 절망적인 요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한국과 일본의 향후 알래스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개발 참여에 대해 거론하고, 백악관에 조선 관련 조직을 신설하는 한편 이 분야에 세제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밝힌 대목은 한국 입장에서 대미 관계를 풀어가는 데 긍정적 요소로 볼 여지가 있었다.
알래스카산 천연가스 도입 또는 개발 참여는 한미간 무역 불균형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미중 전략경쟁에서 결정적 의미를 갖는 조선 분야의 협력은 한국의 강세 영역(조선)에서 한미 안보 및 경제 협력의 중요성을 부각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한편, 이날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핵·미사일 문제나, 세 차례 만남을 가졌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관계 등 북한과 관련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