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스크린 종횡무진…싱어송라이터로 히트곡 다수 선보여
운동선수, 옥스퍼드대 석사, 파일럿 경력 등 다재다능 ‘르네상스 맨’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배우인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28일 별세했다. 향년 88세.
AP,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크리스토퍼슨은 하와이 마우이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생을 마감했다.
크리스토퍼슨의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70대 중반부터 기억상실 증세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크리스토퍼슨은 대학 시절 축구선수로 활동했으며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미 육군 장교로 헬리콥터를 조종했던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크리스토퍼슨은 컨트리뮤직의 중심지인 내슈빌에서 작곡가 겸 작사가로 시작해 싱어송라이터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그는 ‘헬프 미 메이크 잇 스루 더 나잇'(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과 ‘포 더 굿 타임스'(“For the Good Times), 한때 연인이었던 제니스 조플린의 최고 히트곡인 ‘미 앤드 바비 맥기'(Me and Bobby McGee) 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그는 1970년대 초부터는 배우로도 활동하면서 1976년 할리우드 스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함께 출연한 영화 ‘스타 이즈 본'(Star Is Born)으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1936년 6월 텍사스주 브라운스빌에서 장군의 아들로 태어난 크리스토퍼슨은 캘리포니아주 포모나 칼리지에서 문학을 전공하면서 축구와 럭비 선수로도 활동했으며 로즈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영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군인 집안인 가족의 전통에 따라 군에 입대해 헬리콥터 조종사로 활동했으며 대위 전역 후 미국 육군사관학교에서 영문학 강의를 강의할 예정이었으나 우연히 이뤄진 내슈빌 방문이 그의 인생행로를 바꿔놓았다.
크리스토퍼슨은 대중음악계 진출의 꿈을 안고 컬럼비아 레코드사의 레코딩 스튜디오 관리인과 헬리콥터 조종사로 일하면서 대표곡인 ‘헬프 미 메이크 잇 스루 더 나잇’ 등을 세상에 내놓았다.
1965년 데뷔 싱글 ‘베트남 블루스'(Vietnam Blues)를 내고 본격적인 싱어송라이터의 길을 시작해 컨트리뮤직의 슈퍼스타가 됐다.
크리스토퍼슨은 2021년을 끝으로 공연과 녹음 활동을 중단했으나 이후에도 종종 초대 손님으로 무대에 오르곤 했다.
크리스토퍼슨은 1973년 결혼한 싱어송라이터 리타 쿨리지와 듀엣으로 활동하면서 두차례에 걸쳐 그래미상을 받기도 했으나 1980년 이혼했다.
그는 1983년 셋째 부인 리사와 결혼한 뒤 하와이 마우이섬에서 30년 넘게 살았으며 8명의 자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