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임윤찬. 사진=빈체로 제공
26일 예술의전당 뮌헨필하모닉 공연…정명훈 지휘로 앙코르는 ‘아리랑’
객석 2천500석을 빼곡하게 채운 관객들이 한순간 얼어붙은 듯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만들어낸 정적에 집중했다.
2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독일 뮌헨 필하모닉의 내한 공연은 한국을 대표하는 지휘자 정명훈과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끌고 있는 임윤찬의 협연 사실만으로 클래식 애호가들의 기대를 한껏 끌어올린 공연이었다.
이날 공연을 포함해 29일 세종문화회관, 다음 달 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공연은 일찍이 매진됐다. 주차장은 공연 30분 전부터 이미 만차가 돼 음악분수 앞 광장까지 차들이 줄지어 늘어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정명훈과 임윤찬의 사진이 나란히 걸린 공연 현수막 앞은 사진을 찍으려는 관객들로 줄이 길게 늘어졌다. 1천500부를 인쇄한 프로그램북은 공연 직전 동이 나 판매대 앞에서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리는 관객들도 꽤 있었다.
임윤찬의 협연 곡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지난 12일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베를린 필하모닉 내한 공연에서 협연했던 곡과 같은 레퍼토리다. 화려한 기교보다 섬세한 선율과 오케스트라와의 호흡이 돋보이는 작품이어서, 피아노 연주자들에게는 오히려 부담스러운 곡이기도 하다.
임윤찬은 악장마다 다른 분위기로 연주를 이끌었다. 1악장은 건반과 장난을 치듯 부드럽고 가벼운 타건으로 맑은 느낌의 연주를 들려줬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을 때면 어깨를 살며시 흔들며 분위기를 느끼기도 했다. 절망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2악장에서는 고개를 완전히 건반 위에 숙인 채 고뇌하듯 무겁고 신중하게 건반을 눌렀다. 3악장에서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펼쳐졌다. 건반 위를 통통 뛰어다니는 듯한 타건이 주는 활력과 다이내믹한 강약 조절이 주는 웅장함을 동시에 선사했다.
무엇보다 1악장이 끝날 무렵 임윤찬이 선사한 카덴차에서는 ‘천재’의 음악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카덴차는 악곡이나 악장이 끝나기 직전 독주자가 기교를 발휘할 수 있도록 구성된 무반주 연주 구간이다. 임윤찬은 자신만의 호흡대로 카덴차를 이끌었다. 숨 막히는 정적 뒤에 여린 음을 낮게 뱉어내고, 낮은음에서부터 높은음으로 순식간에 미끄러지듯 질주하다 영롱한 음색의 트릴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연주가 끝나자 정명훈은 양팔을 벌려 임윤찬을 감싸 안았고, 피아노를 자유자재로 주무르던 임윤찬은 정명훈 가슴팍에 아이처럼 머리를 파묻었다. 객석의 큰 환호와 박수 속에서 몇차례 무대에서 나갔다 다시 들어오기를 반복한 임유찬은 앙코르곡으로 리스트의 ‘사랑의 꿈’을 들려줬다. 최근 클래식 명문 레이블 데카와 리코딩 전속 계약을 체결하고 유튜브에 원테이크로 촬영한 연주 영상을 올린 작품으로 팬들에게는 반가운 곡이었다.
이날 객석에서는 더 뜨거워진 임윤찬 신드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앙코르 연주가 끝나자 1열에 앉아있던 관객은 새빨간 장미 한 송이를 임윤찬에게 건네며 ‘팬심’을 전했다. 임윤찬은 장미를 받아 악장에게 다시 선물했다. 이른바 ‘대포 카메라’라고 불리는 전문 카메라로 임윤찬의 모습을 연신 찍는 관객도 눈에 띄었다.
2부에서 뮌헨 필하모닉은 ‘독일 전통 사운드의 계승자’라고 불리는 교향악단다운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을 들려줬다. 공연을 마치자 객석에서는 기립 박수가 터져 나왔다. 뮌헨 필하모닉 단원들도 발을 구르며 지휘를 마친 정명훈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정명훈은 “이 곡은 대한민국 전체에서 한 사람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아리랑’을 앙코르곡으로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