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 의무’를 ‘법적 의무’로 전환하는 데만 6년 걸려
한국보다 먼저 저출산·고령화를 경험한 일본에서 노동자는 65살까지 일할 수 있다.
일본이 ‘해고되지 않을 권리’를 넘어 ‘일할 수 있는 권리’라는 측면에서 정년을 65세로 늘린 것은 인구구조 변화를 반영해 연금 수급개시 연령을 미루면서 발생하는 소득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였다.
20년에 걸쳐 65세 고용을 정착시킨 일본은 이제 ’70세 고용’을 바라보고 있다.
◇ 저출산·고령화 동시에 겪는 한국과 일본
1970년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일본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2000년 17.4%였고, 2010년 23.0%에 도달했다.
2000년 들어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한국의 고령인구 비율은 2021년 16.5%였고 2028년이면 23.3%로 상승할 전망이다.
작년 기준 합계출산율은 일본이 1.26, 한국이 0.78이다.
시기와 속도 측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저출산과 고령화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일본은 비슷한 처지다.
일본은 남성 2025년·여성 2030년, 한국은 2033년이면 연금 수급개시 연령이 65세로 상향된다는 것도 닮았다.
다만 올해 기준으로 정년이 60세이고 연금 수급개시 연령이 63세라 소득 공백(크레바스)이 발생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정년과 연금 수급개시 연령을 나란히 맞춰왔다.
일본은 정년과 연금을 패키지로 개혁해왔다는 뜻이다.
최근 한국 국민연금심의위원회도 “고령자 계속고용 여건이 성숙된 이후 (연금 수급개시 연령을) 늦추는 방안을 논의한다”고 밝힌 바 있다.
◇ ‘소득 공백’ 메우려 단계적·자발적 정년제도 개혁
후생연금 수급개시 연령을 단계적으로 늦추면서 발생하는 소득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일본은 2000년 ‘고령자 고용안정법’을 개정했다.
정년을 55세에서 60세로 연장한 지 2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인 만큼 일본 정부는 속도 조절에 신경 썼다.
곧장 정년을 연장하기보다는 자발적으로 고령자 고용을 확보하라는 취지로 기업에 노력 의무를 부여했고, 노력 의무를 법적 의무로 전환하는 데는 6년이라는 기간을 뒀다.
법적 의무에는 경과규정을 두고 연금 수급개시 연령 인상에 맞춰 3년에 1세씩 정년을 단계적으로 높였다.
다양한 방법으로 정년을 연장할 수 있도록 기업에 선택권을 줬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사용자는 말 그대로 정년을 ‘연장’할 수 있었지만, 정년을 ‘폐지’하거나, 계속고용(재고용)을 할 수도 있었다.
또 고령장애인고용지원기구(JEED)를 통해 노무사와 중소기업진단사를 파견해 중소기업에 고령자 고용확보를 위한 인사노무관리 컨설팅을 제공해주고 있다. 한국에도 유사한 제도로 노사발전재단이 제공하는 ‘일터혁신 컨설팅’이 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작년을 기준으로 65세 고용확보 조치를 실시한 상시근로자 21인 이상 일본 기업은 23만5천620곳으로 99.9%를 차지했다.
정년을 폐지한 기업이 3.9%, 정년을 연장한 기업이 25.5%, 계속고용을 도입한 기업이 70.6%를 차지했다.
고용계약을 다시 체결하는 과정에서 임금을 낮출 수 있는 계속고용을 선택한 기업이 아직 다수지만, 정년을 폐지하거나 연장하는 기업도 점점 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슈쿠리 야키히로 고령자고용대책과장은 상대적으로 높은 계속고용 도입 비율에 대해 “인건비 증가 우려가 있지 않나 싶다”며 “고령자에 대해 임금을 큰 폭으로 줄이는 조치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고령자 고용확보 조치로 60대 이상 취업률은 유의미하게 상승했다.
2006년부터 2021년까지 60∼64세 취업률은 52.6%에서 71.5%로, 65∼69세 취업률은 34.6%에서 50.3%로, 70대 이상 취업률은 13.3%에서 18.1%로 올랐다.
일본 정부는 정년을 70세로 늘리기 위한 작업에도 이미 착수했다.
2021년부터 70세까지 고용을 확보하도록 기업에 노력 의무를 부여했고, 정년연장·정년폐지·계속고용 외에 ‘프리랜서 계약’, ‘사회공헌사업 종사’라는 선택지를 신설했다. 다만 프리랜서 계약과 사회공헌사업 종사 옵션을 선택한 기업은 아직 없다고 한다.
슈쿠리 과장은 “노력 의무를 부여한 뒤에는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서도 “(70세 고용) 의무화를 언제 할지는 아직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작년까지 70세 고용확보 조치를 도입한 기업은 6만5천782곳으로 27.9%에 그쳤다.
◇ 임금체계·노사관계 등 여건 차이…”한국에 맞게 제도 보완해야”
일본에서 시행 중인 계속고용 제도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곤란하다는 것이 전문가 평가다.
앞서 언급했듯이 저출산·고령화 시기와 속도에 차이가 있어 정년과 연금 수급개시 연령을 조정하는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계속고용이 ‘정년을 채운 뒤에도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60세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직장을 떠나는 노동자를 줄이기 위한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이유에서 양대노총은 계속고용보다는 입법을 통한 정년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반대로 기업 입장에서는 임금체계 연공성을 완화해 인건비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본에서는 보직을 내려놓으면 ‘직책급’을 받지 않게 되기 때문에 50대부터 임금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경우 정년까지 고용을 유지하는 노동자 비중이 제한적”이라며 “이런 여건에 맞춰 (계속고용 제도를) 수정·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