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달러 제안받고 다리 풀린 이정후…”여러 감정 교차”

샌프란시스코와 대형 계약 맺고 귀국 “책임감 느끼며 잘하겠다”

“홈구장, 나와 잘 맞아…타격폼 수정 없이 부딪쳐볼 것”

‘영웅’에서 ‘거인’으로 변신한 이정후(25·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사진)는 1억 달러가 넘는 계약을 제안받았을 때 다리가 풀릴 만큼 기뻤고, 거액을 받게 된 만큼 최고의 플레이를 펼치겠다고 다짐했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샌프란시스코와 계약기간 6년 총액 1억1천300만달러의 대형 계약을 맺은 이정후는 19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밝은 표정으로 귀국한 뒤 계약 과정과 목표, 향후 계획에 관해 밝혔다.

그는 MLB 진출을 꿈꾸는 꿈나무들과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준 이들에게도 조언과 감사의 뜻을 표했다.

아버지인 이종범 코치를 비롯해 매제이자 MLB 진출을 노리는 고우석(LG 트윈스), 같은 지구 라이벌로 만나게 될 친한 선배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관해서도 답했다.

비슷한 시기에 경쟁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계약한 오타니 쇼헤이에 관해선 “비교할 수 없는 선수”라고 선을 그었다.

다음은 이정후와 일문일답.

— MLB 진출의 꿈은 언제부터 꿨나.

▲ 초등학교 때 꿨고, 조금 접어뒀다가 (도쿄) 올림픽에 갔을 때 다시 꾸기 시작했다. 이제 1차 목표를 이룬 것 같다. 미국에 가서 잘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가 됐다.

— 1억 달러가 넘는 계약을 제시받았을 때 어땠나.

▲ (다리가) 조금 풀렸다.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 (홈구장인) 오라클 파크를 밟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 MLB 구장을 간 건 키움 히어로즈 소속일 때 견학 간 것을 빼면 처음이었다.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MLB 구장 같더라.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구장으로 꼽히는데, 거대하고 웅장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 입단식 때 영어로 소감을 밝힌 것이 화제가 됐는데.

▲ 준비한 만큼 안 나온 것 같다. KBO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들이 (유창하진 않지만) 한국말로 말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봤을 때 멋지다고 느꼈다. 나도 영어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생각만큼 되지는 않았는데 더 노력하겠다.

— 적응을 위해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 슬슬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미국에 있을 때 음식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야구 준비를 잘해야 할 것 같다.

— 샌프란시스코가 엄청난 금액을 안겼는데, 본인에 관한 현지의 기대감을 많이 실감했나.

▲ 에이전트(스콧 보라스)가 해준 말이 기억난다. 에이전트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한 것에 관한 보상을 받은 것이니 부담 느낄 필요가 없다’고 했다. 부담보다는 기대가 크다.

— 계약할 때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 단장님이 직접 한국에 와주셨다. 협상할 때도 나를 원하는 느낌을 받았다. 역사 깊은 팀에서 뛸 수 있게 돼 영광이다.

— 지구 라이벌인 다저스엔 오타니가 있어서 동기부여가 될 것 같은데.

▲ 오타니는 세계적으로 야구를 가장 잘하는 선수다. 나는 시작하는 단계다. 비교가 안 된다.

— 빠른 공 대처에 관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 올해 타격폼을 바꾸기도 했었다. 이런 변화하는 모습을 미국에선 높게 평가해주시더라. 일단 부딪쳐보겠다. 난 아직 어리기 때문에 빨리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 아버지인 이종범 코치가 부럽다고 하시던데.

▲ 어머니의 헌신이 없었다면 내가 이렇게 클 수 없었다. 아버지가 선수 시절 해주지 못했던 것을 어머니가 다 해주셨다.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아버지에게도 감사드린다. 내가 무엇을 선택할 때마다 반대하지 않으시고 항상 저를 믿어주셨다.

— 계약 내용 중 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 미국엔 지역사회에 기부하는 문화가 있더라. 나도 기부 내용을 넣을 수 있게 돼 뿌듯했다.

— 내년 시즌 목표는.

▲ 슬슬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사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냥 미국에서 운동하고 온 기분이다. 조금씩 실감하면서 목표를 잡겠다.

— 친정팀 키움도 많은 돈을 받게 됐다. 느낌은 어떤가.

▲ 선수들을 위해 더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다. 지금도 충분하지만, 선수들을 위해 더 많이 써달라.

— KBO리그를 거쳐 미국에 진출하는 후배들에게 동기부여가 될 것 같은데.

▲ 이런 계약을 하게 돼 친구들과 후배들도 꿈을 키울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보다 더 재능있고 뛰어난 선수들이 많다.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더 열심히 했으면 한다. 나는 김하성 형이 매우 잘해서 그 덕을 봤다. 형이 잘해 놓은 것을 내가 망칠 순 없다. 책임감을 느끼며 열심히 하겠다.

— 김하성과는 같은 지구 라이벌로 상대해야 하는데.

▲ 상대 선수로 만나게 돼 설레고 기대된다.

— 본인이 생각하는 1호 기록이 있다면.

▲ (오라클파크 오른쪽 담장 밖으로 떨어지는) 스플래시 히트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난 왼손타자니까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 오라클 파크가 투수 친화적인 구장인데 준비하고 있는 점이 있다면.

▲ 우측 담장까지 거리는 짧게 느껴졌지만, 담장이 높더라. 우중간까지 공간은 넓었다. 내 장점을 잘 살리면 내게 잘 맞는 구장이 될 것 같다. 난 홈런 타자가 아니고 좌우로 공을 칠 수 있는 선수라서 내 장점을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 중견수 수비도 해야 하는데.

▲ 좌중간 수비는 괜찮을 것 같은데, 우중간 수비는 어려울 것 같다. 좌중간까지는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 같은 느낌이 난다. 우중간은 조금 더 깊고 펜스가 벽돌로 돼 있어서 공이 어디로 튈지 예측이 잘 안된다. 그런 부분을 잘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 (매제인) 고우석도 MLB 도전을 하고 있는데 어떤 조언을 했나.

▲ 우석이가 축하한다고 연락해줬다. 계약에 관한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고 조카 잘 있냐고 물었다. (웃음)

— 김하성과 나눈 대화가 있다면.

▲ 계약 후 가장 먼저 연락했다. 하성이 형이 좋은 감독님(밥 멜빈) 밑에서 운동하게 됐으니 야구만 잘하면 된다고 했다.

— 김하성은 트레이드설이 나오고 있는데 같은 팀에서 뛰고 싶은 생각은 없나.

▲ 뛰면 좋을 것 같다. 워낙 (영입을 원하는) 팀이 많고 어떻게 될지 모른다.

— 김혜성도 MLB 진출을 바라고 있는데.

▲ 기사를 보고 알았다. 혜성이도 욕심이 많은 친구다. 준비를 잘하면 좋은 구단과 좋은 계약을 맺을 수 있을 것 같다.

— 앞으로 일정은.

▲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미국으로 가기 전까지는 훈련하면서 지낼 것 같다.

— 입단식에서 한 ‘핸섬?'(잘 생겼느냐)이라는 말이 화제가 됐는데

▲ 카메라 셔터 소리밖에 안 들려서 어색했다. 갑자기 생각난 말이 그것밖에 없었다.

— 구체적인 훈련 일정은.

▲ 10월 말부터 운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몸 상태는 좋다. 타격폼을 수정할 계획은 없고, 일단 부딪쳐보겠다.

—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지난 7년 동안 감사했다. 미국에서 시간 날 때마다 마지막 (KBO리그) 홈 경기, 마지막 타석에 섰을 때 팬들이 응원해주셨던 영상을 계속 봤다. 응원과 함성 잊지 않겠다. 가슴 속에 잘 새기면서 열심히 하겠다.

cycle@yna.co.kr

취재진에 둘러싸인 이정후(영종도=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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