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주식·국채 ‘트리플 약세’
“외국인, 美주식·국채·회사채 4경4천조원 보유”
“당장 대체할 자산 없어” 지적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밀어붙인 관세 정책과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압박 행보 등으로 인해 시장 불안이 커지고 있다.
전방위적인 관세 전쟁을 본격화한 이후 미국의 주가와 국채 가격, 달러화 가치가 트리플 약세를 보이면서 일각에서는 미국의 금융 패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진단마저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21일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상대로 기준금리 인하를 거듭 압박하며 충격파가 증폭됐다면서, 미국 자산의 펀더멘털과 미국의 경제 우위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올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가 12.3% 하락하는 등 미 증시가 부진한 가운데, 그동안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여겨져온 달러화와 미 국채 가격이 동시에 약세를 보이는 상황이다.
주요 6개국 통화(유로화·엔화 등)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올해 9% 넘게 떨어졌다. 시장금리의 벤치마크인 10년물 미 국채 금리는 이달 초 3.85%를 찍은 뒤 4.58%까지 치솟았고 4.4%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 대선 직후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 수혜 자산이 랠리를 펼치는 ‘트럼프 트레이드’가 연출됐고, 세계적 경기 둔화 우려에도 미국 자산은 강세를 보이는 ‘미국 예외주의’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글로벌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을 매도하는 ‘셀 아메리카’처럼 보인다는 게 블룸버그 평가다.
독일 중앙은행 분데스방크의 옌스 바이트만 전 총재는 최근 “우리 눈앞에서 지정학적 권력구조가 재편되고 있다”면서 “과도한 미국의 특권은 절대적인 게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은행 바클리의 전략가들은 달러 가치 전망을 하향 조정하면서 “파월 의장의 해임 가능성이 여전히 낮다고 보지만, 연준 독립성이 약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있는 만큼 달러 리스크가 무시하기에는 너무 크다”고 봤다.
미국 자산 약세 현상은 미국이 세계 무역 질서와 안보를 유지해오던 모습에서 벗어나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미국 우선주의’ 기조 속에서 목격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다른 국가들이 미국의 달러화와 소비 시장, 안보에 무임 승차해왔다며 이를 바꾸겠다고 벼르고 있다. 미국 제조업 쇠퇴, 국가 부채, 실업 등의 문제를 ‘불공정한’ 무역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2일 전 세계 교역 상대국에 대한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표한 뒤 오히려 미국 자산시장에서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아폴로 매니지먼트의 토르스텐 슬록 수석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외국인들은 미국 주식 19조 달러(약 2경7천조원), 미 국채 7조 달러(약 1경원), 미 회사채 5조 달러(약 7천조원) 상당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전체 시장의 20∼30% 비중인 만큼, 이들이 자산 처분에 나설 경우 큰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JP모건 자산운용의 데이비드 켈리 수석 전략가는 “고도의 보호주의적 정책으로의 갑작스러운 전환에 따른 미국의 평판 손상을 생각해보라”면서 미국 정책에 대한 신뢰 하락은 미국 자산에 대한 지불 용의 가격을 낮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블룸버그는 1971년 금본위제 폐지, 2008년 금융위기 때도 미국의 신뢰도에 구멍이 난 적이 있지만 이를 복구했다고 짚었다.
미국 자산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다고 하더라도 단기간에 대안을 찾기도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29조 달러(약 4경1천조원)에 가까운 미 국채 시장을 대체할 자산은 없고, 달러는 외환 거래의 90%와 각국 중앙은행 외환보유고의 60%가량을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스와르 프라사드 코넬대 교수는 탈달러 움직임에 대해 “곧 한계에 직면할 것”이라면서 미국 금융시장과 달러에 만만찮은 경쟁 상대가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