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료 급등으로 400만명 무보험 위기
미국의 의료비 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18%를 차지하며, 국민이 쓰는 돈 5달러 중 1달러가 의료비로 사용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연방 정부의 건강보험 보조 정책이 만료되면서 보험료가 급등하고, 수백만 명이 의료보험을 포기하거나 보장 수준이 낮은 상품으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나온 결과여서 주목된다.
비영리 뉴스 에이전시 아메리칸 커뮤니티 미디어(ACOM)는 지난 16일 브리핑을 열고 최근 급격히 상승한 의료보험 비용의 구조적 원인과 사회·경제적 파장을 집중 조명했다. 참석한 전문가들은 보험료 보조 제도 복원과 함께 약가 규제 강화, 시장 경쟁 촉진, 메디케어 확대 등 근본적인 구조 개혁이 병행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수니타 소라브지 ACOM 보건 담당 편집장은 “미국 내 약 2천만 명이 가입한 오바마케어(ACA) 보험에서 월 보험료가 두 배 이상 오르는 가격 충격이 발생하고 있다”며 “가입자들이 높은 자기부담금과 공제액을 감수하거나 보험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이미 140만 명이 ACA 보험에서 탈락했으며, 오는 3월까지 최대 400만 명 이상이 무보험 상태에 놓일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급등한 보험료로 인해 직원 건강보험 유지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앤서니 라이트 ‘패밀리스 USA’ 사무총장은 “올해 초 만료된 강화 보험료 세액공제가 이번 위기의 핵심 원인”이라며 “가구 소득 대비 보험료 부담에 상한을 두던 안전장치가 사라지면서 부담이 고스란히 가계에 전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소득층 가구가 월 수백 달러의 보험료를 부담하는 상황에 놓였고, 50~60대 부부의 경우 연간 보험료가 1만~1만5천 달러에 이르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탠퍼드대 경제학자 닐 마호니 교수는 “미국의 의료 지출 비중은 두 세대 전 8%에서 현재 18%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며 “동일한 의료 서비스를 다른 선진국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지불하는 구조가 핵심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올해 미국 가정의 평균 가족 건강보험 비용이 연 2만7천 달러에 달한다며, 이는 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과 임금 인상 억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또한 높은 공동부담금(co-pay)은 당뇨·고혈압 관리나 정기 검진 같은 필수 치료까지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메리트 베이시 ‘환자를 위한 합리적 약(Patients for Affordable Drugs)’ 사무국장은 “미국 소비자는 동일한 브랜드 의약품에 대해 다른 고소득 국가보다 평균 4~8배 높은 가격을 지불한다”며 제약회사의 독점과 특허 남용을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제네릭 의약품이 시장에 진입하면 평균 39%, 경쟁이 확대되면 최대 95%까지 가격 인하 효과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다만 올해 1월부터 메디케어가 고가 의약품 10종에 대해 직접 가격 협상을 실시해 평균 63%의 가격 인하가 이뤄진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업계의 반발과 소송이 이어지고 있어 제도의 안정적 정착은 과제로 남아 있다.
라이트 총장은 “보험료 부담 상한 보장은 출발점에 불과하다”며 “의료비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는 왜곡된 시장 구조 자체를 바로잡지 않으면 위기는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의료비 부담이 가계와 중소기업, 국가 재정 전반에 심각한 압박을 가하고 있는 만큼, 단기 처방을 넘어선 구조적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