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과장’ 애환 연기하고 떠난 오현경…”아흔 앞두고 연극 열정”

타고난 끼·뛰어난 발음으로 활약…’휘가로의 결혼’ 등 연극 무대 활약

두 차례 암 수술 극복하고 무대 오르며 연극 향한 열정 불태워

“내일모레 아흔이신데도 새 작품을 하고 싶어 하셨어요. 연극을 향한 열정을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어요.”

1일 별세한 연극배우 오현경의 딸 지혜 씨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아버지의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을 이렇게 회고했다.

1936년생인 고인은 서울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 교내 연극부를 만들어 연극배우의 길에 접어들었다. 연극부를 만드는 과정에서 교장선생님을 설득하기 위해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부원으로 모집했다고 한다.

첫 연극작품은 1955년 전국고등학교연극경연대회에 출품한 ‘사육신’. 오현경은 데뷔작부터 남자연기상을 수상하며 연극인의 자질을 드러냈다.

연세대 국문학과에 진학한 그는 전공을 물으면 연극이라고 답할 정도로 연극을 향한 애정이 남달랐다. 국문학과에 진학한 까닭 역시 희곡을 본격적으로 공부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오현경은 재학 중 연세극예술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12편의 연극에 참여하며 열성을 쏟았다. 1학년 때 응원단장에 뽑힐 정도로 넘치는 끼를 갖춘 학생이기도 했다.

그는 학업을 마치고 극단 실험극장 창립 동인으로 활동하며 ‘휘가로의 결혼’, 맹진사댁 경사’, ‘동천홍’, ‘허생전’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오현경은 타고난 끼로 안방극장도 빛냈다. 1961년 KBS 공채 1기 탤런트로 선발된 그는 이후 TBC로 자리를 옮겨 ‘파란 눈의 며느리’, ‘내일도 푸른하늘’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작품은 1987∼1993년 인기리 방영된 KBS 드라마 ‘TV 손자병법’이었다. 고인은 종합상사의 만년 과장 이장수 역을 맡아 ‘까불고 있어!’라는 유행어와 함께 직장인들의 애환을 표현해 세대를 넘나드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1994년 식도암, 2007년 위암 수술 등 투병 생활로 부침을 겪기도 했으나 다시 무대로 돌아와 활약했다. 2008년 서울연극제 참가작인 ‘주인공’에서 최팔영 역을 맡아 남자연기상을 받았고, 2009년 ‘봄날’에서는 아버지를 연기해 대한민국연극대상 남자연기상을 받았다.

팔순을 넘긴 2020년에도 연극 ‘레미제라블’에 출연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했으나 지난해 8월 뇌출혈로 쓰러진 뒤 다시 무대에 서지 못했다.

지혜 씨는 “아버지가 쓰러지시기 5일 전만 해도 손숙 선생님 공연을 보러 가셨다”며 “늘 연극 무대를 그리워하셨던 분”이라고 기억했다.

지난해 5월 연세극예술연구회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합동으로 공연한 ‘한여름 밤의 꿈’에 잠깐 출연한 것이 유작으로 남았다.

고인은 생전 뛰어난 발음과 화술 덕에 명배우로 꼽혔다. 2000년에는 배우들에게 무료로 발음과 화술, 연기 노하우를 전수하는 워크숍 센터 ‘송백당’을 열기도 했다.

그는 생전에 “연극무대에서 마이크를 쓴다는 것은 배우로서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발성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동아연극상 남우조연상(1966),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연기상(1985), KBS 연기대상(1992) 등 다수의 수상 경력도 남겼다. 2013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추대됐다.

고인은 2017년 별세한 배우 윤소정과 사이에 딸 오지혜, 아들 오세호를 뒀다. 오지혜 역시 부모님의 뒤를 이어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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