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美대학가 반전시위의 ‘진앙’ 컬럼비아대 가보니…곳곳에 긴장감

25일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캠퍼스 교정 잔디밭에 가자 전쟁을 반대하는 학생들이 텐트를 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경찰, 캠퍼스 주변 봉쇄…신분증 체크하며 학생·교직원만 진입 허용해

교내엔 팔레스타인 깃발 붙인 텐트촌…인근 잔디밭엔 이스라엘 국기 대비

시위대 “학살 종식위해 투쟁” vs 시위반대 유대인학생 “표현자유 도 넘어”

‘가자 전쟁 반대’ 시위대가 텐트 농성을 벌이고 있는 미국 뉴욕 시내 컬럼비아대는 캠퍼스 입구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25일 오전 찾은 캠퍼스는 주요 출입구가 봉쇄된 채 뉴욕경찰(NYPD) 차량과 경찰 인력이 곳곳에 깔려 비상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다.

지하철 출입구도 교문 방향은 경찰이 통제선을 설치해 진출입이 차단돼 있었다.

학교 내부로는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채 학생증이나 교직원증을 가진 사람들만 지정된 출입구로 교내 진입이 허가됐다.

보안 요원에게 취재기자임을 밝히고 캠퍼스에 들어가려 했지만 입장이 불가하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대학 측에 캠퍼스 취재를 문의해보니 오후 지정된 시간 동안만 제한적으로 취재진 입장을 허용한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입장 시간까지 기다린 끝에 들어간 캠퍼스 내부는 미국 전역에 대학생들의 가자 전쟁 반대 시위를 촉발한 대학 교정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의외로 평온한 분위기였다.

전쟁 반대를 외치거나 경찰 투입을 비판하는 시위대의 구호 또는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학생들은 바쁘게 건물 사이를 오갔고, 일부 학생들은 대학 본부 건물 앞 계단에 앉아 책을 읽거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대학 측은 대면 강의를 온라인 비대면으로도 들을 수 있도록 정책을 바꿨지만,학기말을 앞두고 있어 여전히 많은 학생이 강의실을 찾은 듯했다.

캠퍼스에 들어 섰을 때 격한 시위나 집회는 없었지만 긴장감과 가자 전쟁을 둘러싼 교내의 갈등의 모습은 캠퍼스 곳곳에서 뚜렷하게 묻어났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캠퍼스 광장 잔디밭에 줄지어 꽂힌 이스라엘 국기와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납치된 유대인들의 사진들이었다.

농성 텐트촌은 그 사진들 너머 캠퍼스 광장 남측 잔디밭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약 60개 안팎의 크고 작은 야영용 텐트 바깥에는 팔레스타인 깃발이 나붙어 있었고, 약 100여명의 학생이 텐트에서 각자 할 일을 하거나 텐트촌 중앙에 모여 앉아 다른 학생의 발언을 듣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전통 복식인 체크무늬 두건(카피예)을 머리나 어깨, 목에 두른 학생들을 비롯해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모자인 키파를 머리에 얹은 학생들도 있었다.

농성단 집행부인 모하메드 헤메이다씨는 “다양한 분야를 전공한 학생과 교직원이 농성에 참여하고 있다”며 “노래나 전통춤, 세미나, 강연 등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라고 설명했다.

카피예를 머리에 두른 커머니 제임스(정치학과 3학년)씨는 “우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향한 집단적 처벌과 대량학살에 우리가 낸 등록금이 지원되는 것을 원치 않는 학생들이다”라며 “우리는 팔레스타인의 해방과 대량학살의 종식을 위해 지금 여기서 싸우고 있다”라고 말했다.

농성 학생들은 ▲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기업에 대한 대학 기금 투자 중단 ▲ 대학 재정 투자금 투명화 ▲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과 관련해 불이익을 받은 학생·교직원에 대한 사면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교정에서 만난 일부 유대인 학생들은 농성 학생들이 규정을 위반하며 농성을 지속하는 데다 유대인 학생들에 물리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며 대학 측에 강력한 대응을 요구하기도 했다.

키파를 쓴 차림의 대니얼(응용수학과 1학년)씨는 “농성단은 학내의 거의 모든 규정을 위반했고, 대학 측과 대화를 시도한다고는 하지만 합의 종결 시한도 계속 연장하고만 있다”며 “대학 측이 통제해야 할 학생들에게 너무 유연하게 대응하다 보니 캠퍼스가 완전히 무정부 상황에 빠졌다”라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의 상징인 ‘다윗의 별’ 목걸이를 한 노암(영화학과 1학년)씨는 “나도 당연히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지만, 폭력을 선동하면서 공동체 구성원에게 위협을 가하는 발언까지 용납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들은 10월 7일 테러가 계속해서 일어나도 된다는 의미의 노래를 부르고, 하마스 깃발을 드는 것마저 허용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컬럼비아대 대학 측의 농성 텐트촌 철거 시도를 기화로 가자 지구 전쟁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는 미국 전역 대학가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지난주 네마트 샤피크 컬럼비아대 총장이 철수 요청을 거부한 시위대를 해산해달라고 경찰에 요구하면서 학생들의 반발이 커졌고, 경찰은 지난 18일 100여명을 무더기로 연행했지만 이후 더 많은 텐트가 들어선 상태다.

공화당 소속의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전날 컬럼비아대를 방문해 기자회견을 열어 혼란을 즉시 수습하지 못하면 샤피크 총장이 사임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시위가 빨리 진압되지 않으면 “주 방위군을 투입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번 시위에 정치권이 개입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일각에선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사태가 더 복잡해지는 게 아니냐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학 측과 시위대는 원만한 해결을 위해 계속 협상을 벌이고 있고, 협상에서 일부 진척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극적인 돌파구는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대학 측은 텐트촌 시위와 관련해 협상 시한을 48시간 연장한다고 지난 24일 밝혔지만, 농성단 측은 “48시간은 경찰 진입이나 그 밖의 법적인 마감 시한을 의미한다기 보다 현재 진행 중인 협상 시한을 의미한다”라며 의미를 축소했다.

한편 교내에서 반전시위가 이어지면서 이 대학에 다니는 한국 유학생들도 이번 사태 여파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김성근 컬럼비아대 대학원 한인학생회장은 “한국 유학생은 아무래도 학생 비자 신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면서도 “현 사태에 대한 입장은 다들 다르겠지만 전반적으로 학생들이 구금되고 하는 상황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어 “다만, 최근 상황이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있는 것 같아 상대적으로 안심이 되는 분위기”라면서 “졸업식이 3주 뒤로 예정되어 있는데 그때만 무사히 넘어간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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