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

애틀랜타 중앙교회 한병철 목사

요즘은 인터넷으로 무엇이든 검색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설교자들은 매우 곤혹스럽습니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인용하던 예화나 명언/인용구도 이제는 소위 ‘팩트체크(사실 확인)’나 ‘출처 검증’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은 교인 한 분이 실시간으로 목사님 설교 팩트 체크를 해서 곤혹스럽다고 하소연합니다. 우리 교인들 가운데는 그런 분이 없겠지요?

우리가 알고 있는 명언들 가운데 그 출처가 잘못 알려진 것들이 종종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소크라테스의 말로 알려진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소크라테스의 말이 아니라 1930년대 일본의 법철학자 오다카 도모오가 <법철학(法哲學)>에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것은 실정법을 존중했기 때문이며, ‘악법도 법’이므로 이를 지켜야 한다”라고 쓴 내용이 소크라테스의 말로 와전된 것입니다.

일본의 군국주의와 식민지 통치를 합리화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악의적인 왜곡이었지요. 또다른 대표적 예가 “내일 지구이 종말이 온다고 할지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말입니다. 한국에서는 이 말이 철학자 스피노자의 말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서양에서는 이게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말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마르틴 루터가 청소년기에 머물렀던 아이제나흐의 집 앞에는 ‘그리고 내일 세상이 멸망함을 알지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새겨진 기념 비석이 사과나무 한 그루와 함께 세워져 있답니다. 또 2017년에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사과나무 500그루를 심는 행사까지 열렸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도 루터의 일기장에 기록되었다는 걸 알 수 있을 뿐, 그가 직접 한 말인지 어디서 인용한 건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게 유독 한국에서만 철학자 스피노자의 말로 알려져 있는지 그 연유는 불분명합니다.

이 말을 누가 처음 했는지는 어쩌면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겁니다. 우리가 관심해야 하는 건 그 출처가 아니라 이 말의 본뜻 아닐까요?

스피노자나 마르틴 루터 모두 힘겨운 시대를 살면서 하루하루를 보람되게 살기 위해 애쓴 사람들입니다. 두 사람 모두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오늘이라는 현실을 충실하게 살았기에 두 사람 모두 이 말을 했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절망적인 현실을 매일 직면하며 살고 있습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지구의 종말이 올 것 같은 위기감이 물려옵니다. 이럴 때일수록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그런 의지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오늘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되고, 다음 주일은 부활주일입니다. 2024년 고난주간을 맞는 우리의 마음은 우울하기만 합니다. 전쟁의 소문이 흉흉하고, 기후 위기로 인한 종말적 현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역사는 뒤로 퇴보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을 믿고 소망하는 사람입니다. 부활을 소망한다는 건 오늘을 한탄하고 막연히 내세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꿋꿋하게 일상을 살아내는 게 아닐까요? 해피 이스터!!!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