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가른 조용필의 쩌렁한 보컬…오빠부대 떼창에 ‘엄지척’

화려한 레이저쇼 속 약 30곡 열창…”내 나이 때 이렇게 할 수 있겠느냐” 농담도

20집 타이틀곡 첫 라이브…마지막 정규앨범에 “아쉽지만 최선 다했다”

‘정녕 그대는 나의 사랑을 받아 줄 수가 없나 / 나의 모나리자 모나리자 그런 표정은 싫어∼!’

‘가왕'(歌王) 조용필(74)이 히트곡 ‘모나리자’의 후렴을 열창하자 장내에서는 한바탕 축제가 펼쳐졌다. 공연장을 채운 ‘오빠부대’는 자리에서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췄고, 이를 지켜보는 조용필 역시 몸을 앞뒤로 살짝살짝 흔들며 박자를 탔다.

가왕 특유의 쩌렁한 보컬은 데뷔 56년 차에도 음 하나를 허투루 흘리지 않을 정도로 정갈했다. 그의 밴드 위대한탄생의 육중한 사운드는 하드 록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에너지를 뿜어냈다.

무대 뒤 일(一)자로 배치된 거대한 전광판과 그 중앙에 자리한 원형 구조물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거대한 눈동자로 변신했다. 음악과 무대를 향한 조용필의 불꽃 같은 집념을 떠올리게 했다.

바로 지난 23일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조용필의 정규 20집 발매 기념 콘서트에서다.

조용필은 이 자리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부터 ‘바운스'(Bounce)와 신보 타이틀곡 ‘그래도 돼’까지 30곡에 육박하는 노래를 흐트러짐 없는 라이브로 들려줬다. 록, 국악, 팝, 트로트 등 다채로운 장르를 오가는 모습은 시대 흐름과 발맞추며 걸어온 음악 외길을 압축한 듯했다.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홀로 쉼 없이 소화하는 콘서트는 어지간한 젊은 후배 가수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기에 객석 곳곳에선 “역시 가왕”, “성량이 대단하다”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조용필은 아낌 없이 박수갈채를 보내는 관객을 향해 “내 나이 때 (이렇게) 할 수 있겠어요?”라고 장난스레 말을 건네며 미소지었다.

이날 공연은 KSPO돔이 암전되고 곧이어 위대한탄생과 조용필이 무대에 등장하며 시작됐다. 객석의 누군가가 ‘조용필’ 이름 석 자를 연호하자 장내는 순식간에 가왕을 찾는 함성으로 가득 찼다.

빨간 재킷에 트레이드 마크 같은 선글라스 차림으로 나타난 조용필은 빠른 비트와 에너지가 돋보이는 ‘아시아의 불꽃’으로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그는 ‘자존심’, ‘물망초’, ‘나는 너 좋아’, ‘그대를 사랑해’까지 다섯 곡을 쉬지 않고 불러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조용필은 ‘나는 물망초!’라는 고음 부분에선 어깨를 살짝 들어 올리고서 마치 단전에서부터 온몸의 힘을 끌어 쓰듯 노래했다. 때로는 양팔을 양옆으로 펼치고 관객의 호응을 유도했고, 오른쪽 다리로는 박자를 타며 노래의 흐름을 면밀히 읽어냈다.

그가 공연의 세트리스트와 사운드는 물론 영상과 무대 효과까지 세심히 신경 쓰기로 정평이 난 만큼, 이날 콘서트에서는 볼거리도 풍성했다.

무대 위 천장에서 내려오는 커다란 일자형 조명은 수시로 ‘ㅅ’자 혹은 ‘ㄱ’로 모양을 바꿔가며 눈부신 천연색 조명을 뿜어냈다. 여기에 위대한탄생의 노련한 연주가 더해지면서 장내는 마치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파티 같은 흥으로 가득 찼다.

조용필은 때로는 록스타처럼 직접 기타를 메고 최희선(기타), 이태윤(베이스) 등 위대한탄생 멤버들과 합주하는 퍼포먼스도 보여줬다.

조용필은 이날 특히 팬들과의 교감에 공을 들였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창밖의 여자’, ‘남겨진 자의 고독’, ‘기다리는 아픔’, ‘킬리만자로의 표범’ 등 옛 히트곡들도 세트리스트에 포함해 팬들을 기쁘게 했다.

조용필은 “1979년에 동아방송 라디오에서 전화가 와서 ‘1980년 1월 1일부터 나가는 드라마의 주제가를 불러 줬으면 좋겠다, 곡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창 밖의 여자'(당시 라디오 드라마 제목)를 내가 전화로 듣고 적었다”라며 “1981년도에는 주차장에서 마주친 PD가 ‘(곡을) 하나 써 줘’해서 만든 게 ‘촛불’이다”라며 ‘창밖의 여자’와 ‘촛불’에 얽힌 뒷얘기도 들려줬다.

조용필이 히트곡 ‘단발머리’를 부르며 객석을 향해 “다 같이!”라며 떼창을 유도하자, 팬들은 일사불란하게 ‘비에 젖은 풀잎처럼 단발머리 곱게 빗은 그 소녀∼’라고 따라 불렀다. 노래가 세상에 나온 지 44년이 흘렀어도 ‘오빠부대’는 ‘그 소녀’로 되돌아간 것만 같았다. 가왕은 이를 보고 흡족한 듯 “좋아요!”라고 화답했다.

관객의 손 하나하나에 들린 ‘땡큐 조용필’, ‘오빠!’ 피켓 가운데에선 ‘용필이 형!’이라고 적힌 문구도 적지 않게 보였다.

조용필이 “저는 이 나이에 아직도 오빠라고 불린다”고 너스레를 떨자, 객석 어딘가에서는 “용필이 형!” 하는 중년 남성 팬의 외침이 들려오기도 했다.

조용필은 지난 달 발매된 정규 20집 타이틀곡 ‘그래도 돼’를 처음으로 무대에서 선보였다. 전광판에서는 황혼의 주인공이 인생의 추억을 회상하는 내용의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왔다. 그가 들려주는 ‘이제는 믿어 믿어봐 / 자신을 믿어 믿어봐 / 지금이야 그때’라는 메시지는 묵묵히 각자의 길을 걸어왔을 팬들에게 건네는 응원처럼 들렸다.

조용필은 마지막 정규앨범으로 공언한 20집에 대해 “스무 번째로 (정규앨범은) 아쉽게도 끝났지만, 저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돌아봤다.

강렬한 멜로디가 인상적인 ‘판도라의 상자’, 세련된 사운드가 돋보이는 ‘미지의 세계’에 이어 ‘모나리자’, ‘여행을 떠나요’ 같은 히트곡이 흘러나오며 콘서트 분위기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조용필은 ‘추억 속의 재회’, ‘꿈’, ‘바운스(Bounce)를 앙코르로 선보이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공연장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는 가왕 특유의 반듯한 인사도 여전했다.

저녁 기온이 0도 가까이 ‘뚝’ 떨어진 초겨울 날씨에도 공연이 열린 KSPO돔 인근은 조용필을 보기 위해 일찌감치 몰려든 팬들로 북적였다. 중장년 여성뿐만이 아니라 남성 팬과 부모를 따라온 젊은 관객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공연장 앞에 마련된 조용필의 등신대에는 그와 ‘투샷’ 사진을 찍으려는 긴 줄이 생겨났다.

조용필 팬클럽 ‘이터널리’의 남상옥 회장은 “20집 타이틀곡 ‘그래도 돼’가 주는 위로가 너무 감동을 준다. 이 감동과 공감은 조용필 음악이 주는 기적”이라며 “기자회견에서 ‘이번 앨범이 마지막이지만 (음악을) 계속하고 싶다’는 오빠의 말에서는 음악을 향한 간절함이 느껴져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11년 전인 2013년 발매돼 전국을 들썩이게 한 ‘바운스’를 마지막 곡으로 부르던 조용필은 옅은 미소를 띠고 팬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척’ 내밀었다. 팬들을 향한 그의 진심이 노랫말 한 글자 한 글자에 꾹꾹 눌러 담겼다. ‘유 메이크 미 바운스∼!'(You Make Me Bou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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