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데 묘하게 끌리네”…요즘 안방극장은 대놓고 B급 감성

‘언더커버 하이스쿨’·’그놈은 흑염룡’…웃음 필요한 시청자 수요 맞아떨어져

신분을 숨기고 학생으로 위장해 고등학교에 잠입한 국정원 요원 정해성(서강준 분)은 전학을 가자마자 불량 학생들에게 잘못 찍혀 ‘빵셔틀’을 당한다.

불과 며칠 전, 안 팀장(전배수)이 눈에 띄지 말고 조용히 학교에 다니라고 신신당부했지만, 한참 어린 학생들에게 무시당하자 속에서 화가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정해성이 학생들을 혼내주려던 그때, 드라마 ‘언더커버 하이스쿨’은 중국 무협 영화 같은 효과음과 함께 스님 옷차림을 한 안 팀장의 환영을 화면에 띄운다. 컴퓨터그래픽(CG)으로 대문짝만하게 합성된 안 팀장의 모습은 어설프고 뜬금없어서 보는 이들에게 헛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요즘 안방극장에서는 대놓고 B급 감성이 물씬 묻어나는 드라마가 대세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병맛’ 재미를 내세운 드라마를 지칭하는 ‘또드'(또라이 드라마)라는 신조어도 탄생했다.

대표적인 예시로 지난달 21일 첫 방송을 시작한 MBC ‘언더커버 하이스쿨’이 있다.

이 드라마는 사라진 고종 황제의 금괴 행방을 쫓기 위해 신분을 숨기고 고등학생으로 위장 잠입한 국정원 요원의 활약기를 그린 코믹 활극이다.

주인공인 국정원의 ‘에이스’ 요원 정해성은 준수한 외모에 신속한 판단력, 뛰어난 싸움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멋진 모습보다는 보기 좋게 망가지는 모습을 더 자주 보여준다.

등 떠밀려 나간 학생회 선거 유세 현장에서 중독성 있는 디스코 노래에 맞춰 능청스럽게 춤을 추고, 중간고사에서 처참한 점수를 받고 좌절하기도 한다.

드라마는 만화 같은 연출과 곳곳에 심어 놓은 황당한 개그 포인트로 웃음을 유발하며 시청자들의 호응을 끌어내고 있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의 화제성 조사인 ‘펀덱스 리포트’에 따르면 ‘언더커버 하이스쿨’은 TV-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드라마 가운데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tvN 월화드라마 ‘그놈은 흑염룡’도 B급 감성이 돋보이는 로맨스 드라마다.

‘그놈은 흑염룡’은 온라인 게임 채팅으로 만나 악연으로 끝난 두 주인공이 16년 후 직장 상사와 직원으로 재회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첫 회부터 두 주인공이 게임 속 캐릭터가 돼 대화하는 모습을 CG로 구현하며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은 재미를 더했다.

‘흑염룡’은 극 중 남자 주인공인 반주연이 사용하는 게임 닉네임이다. 용성그룹 회장의 하나뿐인 손자인 반주연은 용성백화점 전략기획본부장으로, 겉으로 내보이는 모습과는 다르게 유치하고 ‘중2병’ 같은 면모를 갖고 있다.

‘아기야 가자’ 같은 오그라드는 말을 서슴없이 하기도 하고, 샤워하고 나와서 거울 속 모습을 쳐다보며 자신에게 심취하기도 한다.

다소 유치한 장면들도 적지 않지만,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유치해서 웃기다”, “제작진의 ‘똘기’가 느껴져서 재밌다”, “생각 없이 보다 보면 어느새 웃고 있다” 등의 반응이 나온다.

첫 회 시청률 3.5%로 출발한 이 드라마는 매주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고 있다. 6회는 자체 최고 시청률 5.1%를 기록했다.

이처럼 시청자들이 무거운 장르물보다 편하게 볼 수 있는 코미디 작품을 선호하기 시작하면서 안방극장에서는 무거운 이야기도 최대한 가볍게 다뤄내는 경향이 도드라진다.

호불호가 갈리기 쉬운 B급 감성 드라마도 답답한 현실을 잊고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가벼운 콘텐츠를 찾는 시청자들의 수요와 딱 맞아떨어져 팬층을 탄탄하게 다져가고 있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웃음이 필요한 시청자들은 소위 말하는 ‘병맛’ 드라마처럼 앞뒤 없이 빵 터져서 웃을 수 있는 콘텐츠를 원한다”며 “독특한 감성의 코미디도 적절하게 활용하면 오히려 작품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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