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한인 100년사’ 발간[필리핀한인총연합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대건 신부 유학·안창호 독립운동 기지 개척 역사 등 담겨
“한인사회 족적 되짚는 기록물이자 미래 100년 그리는 디딤돌”
필리핀한인총연합회(회장 윤만영)는 일제강점기부터 최근까지의 이주 역사를 담은 ‘필리핀 한인 100년사’를 발간했다고 29일 밝혔다.
한국과 필리핀의 교류 역사는 삼국시대 백제 왕족인 흑치상지(黑齒常之)의 선조가 몽고반점이 있는 흑치국(黑齒國, 필리핀)이라는 일부 사료와 연구에서 처음 나온다. 이후 1801년 전남 신안 우이도의 어부 문순득이 필리핀 북쪽 일로코스 수르 지역에 표류해 9개월간 살았던 기록이 정약전의 ‘표해시말(漂海始末)’에서 소개된다.
1839년 김대건 신부가 필리핀 수도원에서 1년 남짓 신학 공부를 했고, 좀 더 구체적으로 한인들이 이주한 기록은 1929년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가 필리핀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려고 방문했을 때 당시 조선 인삼을 팔던 52명의 한인이 수도 마닐라에 거주한 기록이 있다.
총연합회 산하의 100년사 편찬위원회는 “일제강점기 상해 임시정부는 인도나 필리핀 독립 추진 세력과 교류하면서 서로의 행사에 초대하고 방문했다”며 “안창호는 일제의 탄압으로 고초를 겪는 만주에 사는 한인들의 이상촌 건설과 독립운동의 새로운 기지를 개척하려고 필리핀을 찾았다”고 소개했다.
당시 만주 거주 한인들의 필리핀 이주는 성사되지 않았지만 필리핀 거주 한인들은 도산의 뜻을 이어서 ‘대한인국민회 필리핀지부’를 설립했다.
1970년 이전에 거주한 이들은 일제강점기 강제 징집·징용으로 끌려갔다가 남았거나 한국전쟁 후 필리핀 군인·군무원과 결혼해 이주한 한인 여성들이 대부분이고 극히 일부가 유학이나 장사를 위해 이주를 했다.
이후 1970∼1980년대에는 기업 주재원이나 국제기구 또는 글로벌 기업의 파견으로 왔다가 남거나 선교사로 건너온 이들이 주류를 이뤘고, 1989년 해외여행자유화정책 이후로 관광산업 종사자가 늘면서 한인 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1999년에 1만명을 넘어섰고, 제일 많았던 2009년에는 11만5천여명에 이르렀다. 그러다 점차 줄어들었고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현재는 3만4천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필리핀 한인 사회의 발전과 도전’이라는 부제의 이 책자는 ▲한-필리핀 관계 변화 ▲한인사회 형성과 발전 ▲산업별 한인기업 진출사 ▲공공기관 및 국제기구 진출사 ▲필리핀한인총연합회와 지역한인회 역사 ▲직능별 한인단체 소개 ▲한인 교육과 생활 및 한-필 교류 발자취 ▲한인 사회를 이끈 리더들 등으로 구성돼 있다.
총연합회 이사장으로 100년사 발간을 주도한 변재홍 편찬위원장은 “한류와 K-컬처의 열풍이 필리핀 전역으로 확산한 시점에서 100년사를 발간하게 된 것은 한인 차세대들에게 정체성과 자긍심을 심어주는 뜻깊은 일”이라고 소개했다.
발간을 후원한 재외동포청의 김경협 청장은 “필리핀은 동남아 국가 중 대한민국과 가장 먼저 외교관계를 맺었고 한국전쟁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대규모 병력을 파견해 준 우방국”이라며 “책 발간은 지난 세기 필리핀 한인 사회를 개척한 선배들의 족적을 돌아볼 수 있는 유의미한 기록물이며 미래의 100년을 그려나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격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