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 간격 둬라”…’핫’한 철학자 쇼펜하우어 열풍

책 표지 이미지[유노북스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점가서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등 철학서 강타

자기계발적 내용, 파편화된 인간관계 등 다루며 주목

“많은 수의 모임과 헤어짐을 반복한 고슴도치들은 다른 고슴도치와 최소한의 간격을 두는 것이 최고의 수단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中)

인간관계는 늘 어렵다. 표면 속에 드러나든, 잠복하든, 갈등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어야 하는 필연이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상처를 받기 일쑤다. 적당한 거리감은 그래서 중요하다.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은 베스트셀러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에서 고슴도치처럼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공존하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새해 벽두부터 쇼펜하우어 돌풍이 심상치 않다.

23일 교보문고 1월 둘째 주 베스트셀러 종합순위에 따르면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가 1위를 차지했다. 쇼펜하우어의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는 11위,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은 19위다.

쇼펜하우어 인기가 서점가에 상륙한 건 지난해 11월부터다. TV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인기를 얻었다. 그런 경우 통상 반짝인기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쇼펜하우어 인기는 두 달 넘게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작년 11월 셋째 주 1위를 차지한 후 5주 연속 선두를 지켰다. 이후 2주간 다른 책들에 1위 자리를 내주었다가 3주 만에 재탈환한 후 2주째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다른 쇼펜하우어 관련서도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내리며 쇼펜하우어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서점가에선 이런 현상을 이례적으로 보고 있다. 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은 “철학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이후 10년만”이라며 “쇼펜하우어 관련서는 짧은 말로 이뤄진 데다가 자기 계발적인 요소도 강해 현재 트렌드와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쇼펜하우어는 당대 주류에서 벗어난 철학자였다. 헤겔과 충돌한 후 대학을 떠나 평생 독립 연구자로 활동했고, 무신론자였으며 동양사상에 심취했다. 주류 집단에 편승하지 못한 이단아, 혹은 주류를 배격한 반골 기질이 강한 반항아였다.

아웃사이더였던 그는 다른 학자들과의 교분 대신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학문을 공부하는 데 몰두했다. 요즘 말로 하면 ‘자기 계발’에 열중한 것이다. 이런 삶의 태도가 최근 출간된 쇼펜하우어 관련서에는 묻어 있다. 바쁜 현대생활과 파편화된 인간관계를 위로하고, 자기 계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들이 수록됐다.

가령, “나무도 튼튼하게 자라려면 바람이 필요하다. 인간도 건강하려면 운동이 필요하다” “우리의 모든 불행은 혼자 있을 수 없는 데서 생긴다” “정신이 풍요로워질수록 내면의 공허가 들어갈 공간이 줄어든다” “삶이 괴롭다면 그냥 평소보다 많이 먹고 많이 자라” 등 그의 여러 조언이 SNS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처럼 200여년 전 철학자가 주목받는 것에 대해선 긍정적인 시각이 많다. 철학계의 한 관계자는 “쇼펜하우어 철학을 대중에게 소개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최근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쇼펜하우어 관련 책들은 저자가 원전에서 발췌한 내용이나, 재편집한 내용, 혹은 쇼펜하우어의 글을 토대로 저자 자신이 생각한 내용이 많아 방대한 쇼펜하우어 사상 전체를 담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심도 있는 쇼펜하우어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다소 난해하지만, 쇼펜하우어가 직접 쓴 본격적인 철학서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