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 다른’ 저출산대책 나올까…논의속도 붙지만 문제는 ‘재원’

‘육아휴직 급여 상향·아동수당 연령 확대’ 등 현금지원책 논의 활발

저출산 예산 OECD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데, 국민 13.4%만 “증세 감당”

‘재원 마련’ 고민 깊어가는 저고위…’60조원 세수 펑크’로 교육예산 전용도 쉽지 않아

정부가 하락하는 출산율을 반등시킬 기존과 ‘다른 차원의’ 정책 마련을 위해 활발한 논의를 벌이고 있지만, 정작 그 정책을 추진할 재원을 마련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저출산 문제는 우리가 상황을 더욱 엄중하게 인식하고, 원인과 대책에 대해 그동안과는 다른 차원의 고민을 해야 한다”며 “시간이 많지 않다. 모든 부처가 함께 비상한 각오로 저출산 문제에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정부는 육아휴직 급여를 상향 조정하거나, 아동수당 수급 연령을 늘리는 등 선진국처럼 출산과 육아에 대한 현금 지원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는 저출산 대책의 확대를 반기면서도, 그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에는 부정적인 상황이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나 교육세 일부를 저출산 정책에 사용하는 방안을 포함해 다양한 재원 마련 방안을 고심하지만, ’60조원 세수 펑크’로 이마저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 ‘육아휴직 급여 인상’, ‘청소년도 아동수당’ 추진

저고위는 육아휴직을 늘리기 위해 현재 150만원인 육아휴직 급여의 월 상한액을 최저임금(내년 206만740원) 혹은 그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육아휴직 기간 소득대체율(기존 소득 대비 육아휴직급여로 받는 금액의 비율)이 44.6%에 불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하위권에 머물 정도로 낮아 부모들이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출생아 100명당 육아휴직 사용자 비율은 한국이 여성 21.4명, 남성 1.3명으로, 관련 정보가 공개된 OECD 19개 국가 중 가장 적었다.

현재 만 7살까지인 아동수당의 수급 연령을 늘리고 액수를 높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스웨덴의 경우 16세가 넘어도 고등학교 등에 재학 중이면 학업보조금 용도로 월 1천250크로네(약 15만3천원)의 ‘연장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독일은 구직 중이면 21세까지, 대학 재학 중이거나 직업훈련을 받고 있으면 25세까지 월 250유로(약 35만7천원)를 지급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지급 기간이 지나치게 생애 초기에 몰려있어 그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저고위가 지난 22일 개최한 저출산 관련 재정 전문가 간담회에서는 육아휴직 급여 상한을 15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올리는 방안이 제시됐다.

더불어 육아휴직급여의 25%를 복직 후 6개월이 지나야 주는 사후지급 제도를 없애고, 자영업자와 농어민 등에게도 육아휴직 급여를 지급하는 방안이 제안됐다.

여기에 아동수당 지급 기한을 만 17세까지 늘리면서 급여액도 둘째아나 셋째아 이상에 각각 15만원과 20만원을 지급하는 안도 나왔다.

◇ 11조원 재원 필요한데, 국민들은 ‘증세보다 정부예산 조정’ 원해

저출산 극복 대책에 대한 논의는 최근 미국 뉴욕타임스가 한국의 저출산 위기를 ‘흑사병’에 비유하고 저출산 상황에 대한 부정적인 통계가 잇따라 나오면서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이르면 다음 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이를 전후해 저출산 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추가적인 저출산 대책, 일가정양립 지원정책, 제4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2021~2025년)의 수정판 등을 잇달아 발표할 방침이다.

문제는 이를 추진할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있다.

저고위 간담회에서 나온 여러 방안을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재정은 무려 10조9천321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특단의 대책에는 적지 않은 예산이 필요하지만, 국민 여론은 세금을 더 내면서까지 관련 정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만 19~49세 남녀 2천명을 대상으로 지난 8월 8~25일 실시한 웹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5.1%가 “관련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답했지만, 관련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중복 응답)에 대해서는 13.4%만 “세금을 증액해 마련한다”고 답했다.

반면 가장 많은 80.6%는 “현재 정부 예산을 조정해 저출산 문제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확대해야 한다”고 답했다. 28.1%는 “부모보험 등 사회보험을 신설해야 한다”고 했다.

저고위 관계자는 “토론회에서 나온 대로 11조원 가까운 예산을 늘리면 국내총생산(GDP) 중 가족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OECD 평균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라며 “문제는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인데, 국민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길 원치 않는 상황에서 저출산 예산을 확대하려면 기존 정부 재원을 조정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저고위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가족예산 지출 비율은 1.5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29%에 한참 못 미친다.

가족 예산 중 현금지급은 0.32%로 OECD의 30% 수준밖에 안 된다.

◇ 교육예산 끌어다 쓸까…’60조원 세수펑크’로 교육재원도 급감

이에 저출산 관련 재원을 기존 정부 예산에서 가져오는 방안이 주목받고 있다.

저고위 간담회에서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내국세의 일부를 저출산 대응 예산으로 조정하고, 5조원 규모인 교육예산의 일부도 저출산 극복을 위해 사용하는 방안이 제안됐다.

저출산으로 인해 아동이 감소하고, 유보통합(영유아 교육·보육 통합)으로 남게 되는 어린이집 예산 중 여유가 있는 부분을 저출산 관련 정책에 사용하자는 것이다.

학령인구는 감소하는 데 반해, 내국세의 일정 비율을 무조건 떼어주는 연동형 구조 때문에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남아돌아 방만하게 운영된다는 지적은 제기돼왔다.

감사원은 지난 8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지나치게 많이 배분돼 나눠주기식 현금·복지성 사업에 낭비된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대급 세수 펑크’로 인해 교육청이 받을 교부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적절치 않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올해 60조원에 달하는 세수가 부족한 탓에 11조원에 육박하는 교부금이 지방 교육청에 배분되지 못해 각 지역 교육청은 허리띠를 졸라매는 실정이다.

더구나 예산 전환을 위해서는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해 ‘여소야대’ 상황에서 그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저출산 대책의 재원 마련 방안으로는 ‘부모보험’ 같은 사회보험을 신설해 육아휴직급여 등의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더 큰 틀에서 인구정책과 관련한 세입과 세출을 정해놓고 이 부문의 예산을 안정적으로 사용하는 ‘인구특별회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저고위 관계자는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면서 “교육예산을 저출산 예산으로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포함,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를 가지고 사회적인 논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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