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클루시브 컬렉션’·’밀크브레드’…한글 사라진 제품 마케팅

유통·의류·화장품·외식, 외래어 만여…”매출증가에 효과가 있다고 생각”

립밤→입술보호제·럭셔리→고급·레더→가죽

치열한 마케팅 전쟁이 펼쳐지는 유통·의류·화장품·외식업계에서는 제품 이름부터 홍보 문구까지 한글을 찾아보기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9일 연합뉴스가 한글날을 맞아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에 과도하게 쓰이는 외래어 사례를 살펴봤다.

먼저 의류 업계에서는 스포츠웨어(운동복), 컬렉션(모음), 런웨이(무대), FW 시즌(가을·겨울 시즌) 등의 외래어가 관성적으로 쓰인다.

해외 브랜드 비중이 높은 데다 계절마다 새로운 상품(신상)을 쏟아내면서 세련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한 업체는 신상 제품을 출시하며 ‘이번 익스클루시브(한정판) 컬렉션(모음)은 글로벌(세계적인) 스포츠, 패션 아이콘(대표 인물)인 ○○○이 큐레이팅(선별)한 제품으로 구성됐습니다’라고 홍보했다.

또 다른 업체는 가을 신상품을 선보이며 ‘프리폴(초가을) 시즌 아이템(제품)으로 모던(현대적)하고 세련된 스타일링(꾸미기)을 제안합니다’라고 소개했다.

명품으로 불리는 해외 유명 브랜드들은 소재나 자체적으로 정립한 용어를 우리말로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고집하기도 한다. 가죽은 ‘레더'(leather), 기성복은 ‘레디투웨어'(Ready to wear) 등으로 표기하는 식이다. 외래어를 쓰면 매출 증가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의류업계 한 관계자는 “외국어가 같은 개념을 설명하는 한국어보다 짧고 간결한 경우가 많고 특정 감성을 전달하는 데 더 효과적일 때가 많다”며 “패션 산업을 유럽과 미국에서 주도하고 있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부 글로벌 브랜드의 경우 한국어 표현 대신 외국어를 써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화장품 업계도 립밤(입술 보호제), 선크림(자외선 차단제), 퍼프(화장 솜), 프라이머(피부 정돈제) 등 외래어를 많이 쓴다.

제품 이름도 한방 화장품이 아닌 이상 영어가 대다수다. 투명한 질감을 강조한 입술 제품 ‘언씬 미러 틴트'(UNSEEN MIRROR TINT), 보습감을 강조한 스킨 ‘하이드로 액티브 토너'(HYDRO ACTIVE TONER) 등이 대표적이다.

화장품 업계 한 관계자는 “프라이머를 피부 정돈제로 바꾸면 자칫 의미 전달이 달라질 수도 있다”며 “무조건 한글로 다 바꾸기보다 적절한 수준을 찾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외식업계도 충분히 한글을 사용할 수 있는 메뉴 이름에 영어를 넣거나 한글과 영어를 무리하게 합성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스위트는 ‘달콤한’, 밀크는 ‘우유’, 브레드는 ‘빵’ 등으로 충분히 한글로 표기할 수 있지만 영어 사용을 선호하는 것이다.

제과 브랜드의 제품을 보면 ‘스위트 밀크롤’, ‘밀크브레드’, ‘트윈에그브레드’, ‘다크츄잉스타’ 등 영어 이름이 대다수다.

카페 주문 앱도 영어투성이다. 일례로 한 카페 앱에서 음료 주문을 하려면 ‘order'(오더·주문)라고 영어로 쓰인 탭을 눌러야 하고 메뉴를 고른 뒤에는 ‘HOT'(핫·뜨거운 음료)과 ‘ICED'(아이스·차가운 음료) 중에 선택해야 한다.

제품명이 영어로만 이뤄져 어떤 제품인지 한눈에 알 수 없는 사례도 흔하다. 고구마무스와 옥수수 토핑이 올라간 피자 메뉴 ‘골드 콘 하베스트’, 흑당 시럽과 바닐라 크림 등이 어우러진 커피 ‘아이스 블론드 바닐라 더블 샷 마키아또’ 등이 대표적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빵이나 음료는 크루아상이나 마키아토 등 고유 명칭이 많아 한글로 변환하기가 어렵다”며 “무리하게 한글로 이름을 바꿨다가는 자칫 매출에 타격이 갈 수 있어 (한글명 전환은) 예민한 문제”라고 귀띔했다.

이어 “일부 제품만 한글로 명칭을 짓는 것도 어색하기 때문에 과도하게 영어를 사용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개별 기업뿐 아니라 중소·벤처 분야도 외국어 사용이 꽤 많은 편이다. 중소·벤처기업을 지원하는 사업의 명칭을 외국어로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민간 운영사가 혁신 창업기업을 선정해 추천하면 정부가 기술개발과 사업화 자금 등을 지원하는 ‘팁스'(TIPS)라는 사업이 있다.

팁스에서 육성 단계 유망기업을 발굴해 지원하는 사업은 ‘스케일업-팁스'(Scale-up TIPS)이고 팁스를 글로벌 영역으로 확장한 사업으로는 ‘글로벌 팁스'(Global TIPS)가 있다.

지난해부터는 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기업인 유니콘을 지향하는 생활·지역 분야 혁신기업을 부르는 ‘라이콘'(LICORN)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판촉 행사가 빈번한 유통업계는 고급스러움을 강조하는 ‘프리미엄’, ‘럭셔리’, ‘하이엔드’ 등의 외래어 표현이 자주 쓰인다. 젊은 층을 공략하는 마케팅에서는 ‘뉴’, ‘힙’, ‘트렌디’ 등의 표현을 빈번하게 사용하는 편이다.

할인 행사에는 ‘골든세일위크(Golden Sale Week), ‘파워풀위크'(Power Full Week), ‘메가세일'(Mega Sale), ‘슈퍼페스타'(Super Festa) 등 영어가 쓰이기 일쑤다.

특히 백화점들은 외래어를 젊은 이미지를 불어넣는 요소로 여기는 분위기다.

신세계 센텀시티는 지난해 말 4층에 최신 유행 브랜드들을 입점시키며 ‘뉴컨템포러리 전문관’이라고 명명했고,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은 새로운 콘셉트의 복합쇼핑몰을 선보이며 각각 ‘타임빌라스'(TIMEVILLAS), ‘커넥트'(CONNECT)라는 이름을 내세웠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유통업계에선 영어가 좀 더 세련되고 젊은 느낌을 준다고 보고 한글보다 영어를 선호하는 분위기”라며 “내부적으로 과한 외래어 사용은 자제하려고 하지만 유행에 민감하면서 경쟁이 치열한 업계 특성상 분위기를 전달해야 할 때는 아무래도 영어가 많이 사용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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