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생이자 상인’ 김대중 전 대통령…”역사는 바른길로 진전”

‘김대중 육성 회고록’ 출간…2006~2007년 생전 인터뷰 담아

박명림 연세대 교수 “독서가 그를 큰 지도자로 만들어”

호킹 박사와 찍은 사진 등 미공개 사진 10여장도 수록

“정치인은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해야 합니다. 심지어 최악을 막기 위해서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정치인은 현실 속에서 미래를 향한 진리를 구해야지 진리만 붙들고 현실을 도외시하면 안 됩니다. 내가 항상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함께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그는 서생이기도 했고, 상인이기도 했다. 서생으로서 수만권의 책을 읽었다. “특정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전문가와 소통할 수 있는 지식수준”을 갖추기 위해서였다. 상인으로서 그는 목포일보와 해운회사를 운영해 성공을 맛봤다. 다독(多讀)과 장사를 통해 그가 깨달은 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였다. 사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변수는 무궁했다.

“국민들은 다양합니다. 유식한 사람도 있지만 잘 모르는 분도 있고, 이성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사람도 있지만 감정적인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현실의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관념을 중시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이해관계를 중시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것이 사람 사는 곳의 진짜 모습입니다.”

그는 이런 인식을 지닌 채 정치에 투신했다. 하지만 꽃길만 걸어온 건 아니다. 낙선과 당선을 반복했고, 정권의 탄압과 고초를 겪었다. “다섯번의 죽을 고비”도 넘겼다. 6년의 투옥과 3년의 망명 생활, 장기간의 가택연금도 경험했다. ‘인동초’ 김대중 전 대통령(1924~2009) 얘기다.

탄생 100주년, 서거 15주기를 맞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자서전 ‘김대중 육성 회고록'(한길사)이 13일 출간됐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연구진들과 2006년 7월부터 2007년 10월까지 41회에 걸쳐 42시간 26분 동안 진행한 구술 인터뷰 내용을 담았다. 책은 일제강점기부터 민주화 시기까지 그가 걸어온 발자취를 통해 대한민국사를 조명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자유당과 이승만의 독재 시절, 4·19 혁명을 겪으면서 정치에 나섰고, 박정희 쿠데타와 유신 선포 속에서 죽음을 딛고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다시 전두환 신군부가 등장하면서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고난은 그를 담금질했다. 감옥에선 수없이 책을 읽었고, 망명 생활과 유학을 통해선 세계적 지성들과 토론했다. 그 과정에서 인권에 대한 섬세한 인식과 햇볕정책 등 정치 이론을 다듬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대한민국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 지도자를 만났다.

책은 그가 걸어온 인생 역정을 비롯해 ‘지방자치제’ ‘4대국 안전 보장론’ ‘햇볕정책’ ‘동아시아 공동체’ ‘세계화’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 등 다양한 정책과 이론을 소개한다. 이와 함께 IMF 극복 과정, 남북 정상회담 뒷얘기도 전한다.

아울러 후배 정치인에 대한 고언도 담았다. 다독을 통해 세계관을 넓혀갔던 김 전 대통령은 정치지도자가 될 사람은 반드시 공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훌륭한 정치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우선 필요한 것은 각종 정책에 관한 공부입니다. 공부하는 정치인이 되어야 그다음 단계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마지막 일기에서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고 기록했다. 이런저런 고난을 겪고, 살아가는 게 인간의, 국가의 명운일 수밖에 없지만, 결국, 역사란 한발짝씩 전진해 나간다고 그는 강조했다.

“역사를 길게 보면 결국 국민을 위해서 헌신한 사람이 패배한 경우는 없습니다. 일시적으로 패배할 수는 있지만 역사는 바른길로 진전(進展)합니다.”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기획·김대중 지음. 7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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