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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문화

디아스포라는 어디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

by Newswave25
9월 8, 2026
in 문화, 미디어
Reading Time: 1 min read

쿠바 한인 다룬 ‘헤로니모’·’초선’ 다큐 제작 전후석 감독

변호사 내려놓고 세계 동포 만나며 ‘정체성의 혼종성’ 탐구

남북한 발달장애 아동 돌보는 재미한인 의사 부부 다룬 신작 제작 중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느 지역에 살고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생각과 사유를 하며, 어떤 존재로 살아가느냐입니다. 그것이 디아스포라의 핵심입니다.”

미국 뉴욕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다큐멘터리 연출가로 변신한 재미동포 전후석 감독은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디아스포라를 단순한 지리적 이동이나 혈통적 구분이 아닌 철학적 존재 방식으로 정의했다. 이방인이자 소수자로 살아가며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과 연대하는 삶의 태도라는 것이다.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17세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법조인의 길을 걷던 2016년, 쿠바 여행에서 한인 택시기사를 우연히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에 참여하고 정부 고위 관료를 지낸 헤로니모 임(임은조) 선생의 서사를 담은 첫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2019)를 내놓아 쿠바 한인의 존재를 알리며 반향을 일으켰다.

이어 미국 연방 하원의원에 도전한 한인 정치인 5인의 여정을 담은 ‘초선'(2022)을 제작해 재외동포의 정치 참여와 정체성 문제로 시선을 넓혔다.

남북한 발달장애 어린이들을 돌보는 재미한인 의사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신작을 제작 중인 전 감독을 만나 그가 걸어온 여정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전 감독과의 일문일답.

— 변호사라는 안정적인 길을 벗어나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디아스포라의 삶을 탐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평생 고민해온 ‘정체성’과 자신 또는 부모가 살던 땅을 떠나 사는 ‘디아스포라’의 문제를 2016년 쿠바 여행에서 한인들을 우연히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파고들게 됐다. 처음에는 디아스포라를 단지 모국 밖에 사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로 이해했다. 그러나 지리적 떠남을 넘어 이방인이나 소수자로 살아가며 형성되는 정체성의 혼종성과 다층적 사유, 삶의 방식까지 포괄하는 철학적 개념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 쿠바 혁명에 참여했던 헤로니모 임의 삶에서 세계관을 크게 흔든 점은 무엇인가.

▲ 쿠바에서 태어나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와 함께 혁명에 참여한 뒤 산업부 차관까지 지낸 헤로니모 임 선생은 완전히 현지화된 인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생애 후반기에 한인 정체성을 회복하고 그 중요성을 후손들에게 전하려 했다는 점이 나를 깊이 흔들었다.

전 감독은 애초 20분짜리 유튜브 영상을 기획하고 다시 쿠바를 찾았으나, 현지의 감동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3년 반 동안 영화 제작에 매진했다.

— 제작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과 이를 버티게 한 동력은 무엇이었나.

▲ 쿠바 한인들에게서 받은 감동을 완성도 높은 이야기로 만들어 관객에게 전달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90분 안에 큰 줄기를 세우고 수백 시간의 촬영분을 덜어내며 퍼즐을 맞추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법조인 활동을 멈추고 3년 반 동안 창작에 매달리면서 두려움과 회의도 밀려왔지만, 내가 받은 감동이 디아스포라 후세들에게 큰 울림을 줄 것이라는 확신이 버티게 한 힘이었다.

—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다시 17세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소수자가 되었을 때 느낀 정체성의 혼란과 각성의 순간은 어떠했나.

▲ 그전에는 그냥 ‘전후석’이었는데, 미국에 도착한 순간 ‘아시안’, ‘이방인’으로 타자의 시선을 통해 나를 바라보며 ‘소수성’이라는 주제 의식에 눈을 뜬 것 같았다. 무엇보다 미국 시민권자이면서 한국에서 성장한 사람으로서, 두 정체성을 어떻게 건강하게 받아들일 것인지 고민했다. 그 고민이 결국 나를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으로 이끌었다.

— 1992년 LA 폭동 사건이 정체성 확립에 어떤 계기가 되었나.

▲ LA 폭동은 미국의 한인 이민자들이 ‘코리안 아메리칸’이라는 정체성을 자각하게 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끼리’ 또는 물질적 가치에 머물던 이민자의 삶에서 벗어나 미국 사회의 시민으로서 정치에 참여하고 다른 인종 집단과 소통·연대하며 현지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했다. 모든 디아스포라는 현지화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으면서 현지 사회의 시민으로 역할을 다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모든 디아스포라가 풀어야 할 과제다.

전 감독은 이후 중국 옌볜(延邊)을 비롯해 독일,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카자흐스탄 등 전 세계 동포들을 만나며 디아스포라가 직면한 현지화의 역사를 깊이 성찰했다.

— 전 세계 동포들을 만나며 깨달은 ‘현지화’의 의미는 무엇인가. 모국 사회의 시선 전환이 필요한 이유는.

▲ 각 디아스포라 집단이 현지화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배경과 경험을 모르면 한국 사회는 이들을 색안경을 끼고 보기 쉽다. 그러나 당사자들에게 현지화는 생존 방식이자 복합적인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심축이다. “너는 한국 사람이 아니야”라거나 “지나치게 미국화·중국화됐다”는 말은 디아스포라의 속성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평가다.

— 두 번째 다큐멘터리 ‘초선’을 통해 탐구하고자 했던 소수자의 정치 참여와 연대의 의미는 무엇인가.

▲ ‘헤로니모’가 존재에 대한 근원적 탐색이었다면, ‘초선’은 정치 한가운데서 자신을 증명하려는 디아스포라의 현대적이고 역동적인 면모를 담았다. 미국 정치에 도전하는 한인들에게 모국의 정체성이 어떻게 남아 있으며, 그것이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나아가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수 있을지를 살펴보고 싶었다.

전 감독의 시선은 2018년 ‘헤로니모’ 편집 당시 국내에서 일어난 제주 예멘 난민 수용 논란을 목격하면서 보편적 인류애로 한층 확장됐다. 100년 전 멕시코와 쿠바 농장으로 건너가 고단한 삶을 이어갔던 조선인 이주사를 다루는 동시에, 국내로 들어온 난민을 배척하는 사회를 지켜보며 혈통과 민족주의의 한계를 깊이 돌아보게 됐다.

—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사태를 목격하며 혈통 중심 민족주의의 위험성에 대해 어떤 고민을 했나.

▲ 디아스포라에 대한 고민이 지리·혈통적으로만 머물 때 포용적 개념이 아닌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로 변질할 수 있음을 예멘 난민 사태를 통해 치열하게 느꼈다. 디아스포라의 참된 본질은 보편적 인류애와 궤를 같이할 때 의미가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배척과 혐오의 기제로 나타날 수 있다. 유발 하라리의 표현처럼 주류의 권력에 안주하기보다 이방인을 자처하는 지적·윤리적 태도가 중요하다.

— 전 세계 한인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 전 세계적으로 극우 세력과 혐오주의가 득세하는 가운데 한국도 인종주의적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이념이 아니라 사람을 직접 만나고, 주류가 아닌 이방인의 자리에 서봄으로써 혐오와 편견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 향후 다큐멘터리 제작 계획은 어떻게 되나.

▲ 현재 새로운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북녘과 남녘에서 발달장애 어린이들을 돌보는 재미 한인 의사 부부와 장애 가족들의 이야기다. 남북 관계가 경색돼 촬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디아스포라적 삶과 사유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몇 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잘 마무리되어 세상에 나올 수 있길 기대한다.

 

Tags: 디아스포라전후석쿠바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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