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테르 뒤플로 MIT 교수
‘문제해결 지식그림책 시리즈’ 5권 국내 출간…한국 독자들과 북토크
빈곤연구로 2019년 최연소 노벨경제학상…”어린이책 쓰기, 어릴 적부터 간직한 꿈”
“경제학자 중엔 넥타이 매고 미래를 예측하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실제로 바꿀 수 있는 프로그램을 디자인하고 이것이 효율적으로 작동할지를 연구하지요.”
22일 저녁 서울 강남구 최인아책방에서는 어린이 독자들과 학부모, 그리고 경제학자인 에스테르 뒤플로(51)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만나는 특별한 자리가 마련됐다.
2019년 역대 최연소 노벨경제학상 수상 기록을 쓴 뒤플로가 어린이 독자들을 위해 쓴 ‘문제 해결 지식그림책 시리즈'(라이브리안) 다섯 권의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마련된 북토크였다.
뒤플로 교수는 이 자리에서 어린이들에게 자신을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프로그램을 디자인하고 실행방안을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문제 해결 지식그림책 시리즈’는 뒤플로가 삽화가 샤이엔 올리비에와 함께 작업해 모국인 프랑스에서 지난 9월 출간한 어린이책이다.
▲ 학교교육 ▲ 의료지원 ▲ 노동인권 ▲ 여성과 정치 ▲ 복지제도를 다룬 다섯 권이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책에는 지난 20년간 40여 개의 최빈곤 국가를 찾아다니며 빈곤 퇴치를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설계해온 뒤플로 교수 본인의 경험이 생생히 녹아 있다.
한 예로, 복지제도를 다룬 5권 ‘마녀에게 내민 작은 손’에는 사람들에게 마녀라고 손가락질받는 가난한 할머니가 등장한다.
외롭고 힘겹게 살던 할머니와 꼬마 비비르는 우연히 말동무가 되는데, 마을에 큰일이 벌어지자 흥분한 사람들이 몰려와 할머니를 쫓아내려고 한다. 비비르는 마을 사람들의 오해를 풀기 위해 나서고, 촌장은 할머니의 자립을 도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정부에 신청한다.
이 이야기는 방글라데시에서 처음 시작해 7개국으로 확대돼 10여년 간 시행됐던 한 빈곤퇴치 프로그램을 소재로 했다.
“사람들이 가난한 이들에 대해 갖는 두려움을 보여주는 얘기지요. 비비르 같은 어린아이는 오히려 어른과 달리 편견 없이 그들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어요. 마녀로 불리던 할머니는 나중에 마을 사람들에게 지혜를 나눠주는 사람이 됩니다. 모든 사람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썼어요.”
빈곤 문제 외에도 뒤플로 교수는 ‘문제 해결 지식그림책 시리즈’를 통해 질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면 국가가 나서서 관련 제도와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 노동자의 행복한 삶을 위해선 일자리 창출 외에도 근로환경과 조건을 제대로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어린이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이해하기 쉽도록 친절하게 서술한 것이 돋보인다.
어린이책을 쓰는 건 유년 시절부터 간직해온 꿈이었다.
“어릴 적 읽은 책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저도 인도 캘커타의 가난한 사람들 이야기를 어려서 읽고 큰 영향을 받았고, 그런 사람들을 잊지 않고 꼭 도와주겠다는 마음을 가졌어요.”
뒤플로 교수는 자신이 “길고 지루한, 아무도 읽지 않는 글(논문)을 쓰는 게 직업인 경제학자”라면서 “이번 어린이책 작업을 하면서는 무척 신나고 즐거웠다”며 웃었다.
한국의 어린이 독자들에게 위해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이렇게 답했다.
“언제나 질문을 던지기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항상 세상사에 호기심을 갖고 질문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과 멀리 있는 사람 모두에게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굉장히 멀리 갈 수 있습니다. 물론, 책도 많이 읽어야 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