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4일 오후 2시 30분경, 고요한 오후를 깨는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애틀랜타 총영사관의 성명환 경찰영사였다.
“본부장님, 급히 도움이 필요합니다. 지금 공항인데 휠체어가 고장이 나서 어르신을 도울 방법이 필요합니다.”
사연은 이랬다. 한국에서 대한항공을 타고 애틀랜타 공항에 도착한 한 어르신의 유일한 이동 수단이었던 전동 휠체어가 갑자기 고장 나면서, 공항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거동이 전혀 불가능한 어르신을 돕기 위해 성 영사님이 직접 공항으로 달려 나갔고, 긴급히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다행히 공항에 있던 미션 아가페 이은자 부회장이 현장에 합류해 어르신을 살폈다. 그러나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어르신은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고, 당장 머물 곳조차 마땅치 않았다.
소식을 들은 미션 아가페 제임스 송 회장은 즉시 호텔에 연락해 2주 치 숙박비를 결제했다. 제임스 리 부회장은 본인이 가지고 있던 휠체어를 들고 호텔로 향했다. 성 영사님은 자신의 개인 차량에 어르신을 모시고 직접 호텔로 이동했다.
호텔 로비에 도착해 차량 문이 열리는 순간, 차 안에는 지독한 악취가 가득했다. 긴 비행과 몸 상태로 인해 어르신이 차 안에서 실례를 하신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 영사님은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한 목소리로 어르신을 안심시키며 무거운 몸을 직접 들어 휠체어로 옮겼다.
호텔 방에 도착한 뒤, 더 놀라운 장면이 이어졌다. 성 영사님은 젖은 수건을 꺼내 어르신의 몸을 구석구석 닦아드리기 시작했다.
“어르신, 이쪽으로 조금만 돌려보세요. 괜찮습니다.”
다정한 말로 어르신을 안심시키며 젖은 기저귀와 바지를 갈아입히는 그의 손길은 마치 숙련된 간병인, 아니 자상한 아들 같았다.
미션 아가페에서 16년 동안 봉사를 해왔지만, 생면부지의 민원인을 위해 이토록 헌신적으로 움직이는 공직자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옆에서 돕던 나조차 숨쉬기 어려울 정도의 악취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가 바로 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눈물이 핑 돌았다.
어르신은 미국 시민권과 한국 여권을 모두 가지고 있었고 가족들도 인근에 거주하고 있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이었다. 팔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소변줄에 의지한 채 상처까지 입은 어르신을 호텔에 혼자 둘 수는 없었다.
결국 윤미 햄튼 씨 부부와 상의 끝에 911에 도움을 요청했고, 어르신은 병원으로 이송됐다. 윤미 씨는 병원까지 동행해 의사에게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고, 어르신이 침대에 편안히 눕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발걸음을 돌렸다. 이제 남은 과제는 어르신이 안전하고 편안한 요양시설(Nursing Home)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성명환 경찰영사는 3년 임기로 파견된 경찰 영사다. 마음만 먹으면 사무적인 업무만 수행하다 돌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평소에도 교도소를 방문하며 소외된 한인들을 위로하고 돕는 일에 앞장서 왔다.
진정한 선행은 보여주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마음처럼 내 것과 네 것을 가리지 않고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교민들을 지키고 돕는 이런 공직자가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 한인사회에 큰 위안이자 희망이다.
우리는 종종 세상이 각박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날 공항에서 나는 분명히 보았다. 여전히 누군가는 자신의 시간과 힘을 아낌없이 내어 타인을 돕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천사를 보았다.
